아주 오래전에 우리군민신문에 ‘벌초하러 가늘 길’이란 재목으로 사진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곧올재 산자락을 올라가야 하는데 한 명이 겨우 걸을 수 있는 길에 바닥은 빗물에 패여 걷기가 사나웠다.

벌초하러 10여 명이 이동하는데 한 명씩 줄을 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1면에 대문짝만하게 게재했다.

애들을 알아보는 독자들이 연락이 왔다.

“어, 사진 속에 애들 대표님 애들이네요”

벌초하는 길은 온 가족이 총출동한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도 예외 없이 총출동이다.

마치 공군에 근무할 때 눈이 내리면 비상이 걸리고 직위가 어떻게 되든 모든 근무자가 제설작업에 함께 하는 일사불란함의 모습이다.

출가한 여동생 식구들이라도 올 때면 곧올재 온 산이 떠들썩해진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벌초에 동행하는데 사연들도 많았다.

벌초를 할 때면 예취기를 준비하고 묘 주변에 자란 나무를 정리하기 위해 엔진톱도 준비한다. 가시나무는 한해만 지나도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모른다.

톱날까지 새로 교체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벌초를 시작했는데, 이날은 동생네 가족까지 모두 함께 했다. 작은 큰아버지 산소를 정리하는 중에 아카시아 나무가 산소 중심에서 뿌리를 뻗고 올라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놈 봐라,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날을 새로 교체한 엔진톱의 시동 줄을 힘껏 당겼다.

하얀 연기를 뿜으며 스로틀에 반응하면서 지축을 흔든다. 자세를 잡고 엔진톱의 스로틀을 최대치로 올렸다.

굉음을 내면서 지면과 가까운 쪽의 아카시아 나무를 한 번에 날려버렸다. 힘을 강하게 주면서 한 방에 쓱 자르는데 새날을 장착한 엔진톱은 예전에 그 무디던 톱이 아니었다.

가시나무는 한 번에 날려버렸고, 나무를 지나 쑥 들어왔다. 무릎이 절반을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엔진톱은 톱날의 면적만큼 갈아 날려버리기 때문에 순간 ‘아 장애인 될 수 있겠구나’ 순간이지만 많은 염려와 세상의 걱정들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무릎 정중앙을 공격한 엔진톱은 무자비했다. 살점은 찢어지듯 날아가고 벌어진 무릎은 속살을 드러내면서 피를 토해냈다.

물로 나무 찌꺼기를 대충 씻은 다음 수건으로 상처를 감쌌다. 아이들의 얼굴은 시퍼렇게 변해있고, 부축을 받아 병원으로 달렸다.

톱날은 무릎관절로 정확하게 들어왔는데 살점들을 날리던 톱날은 뼈 앞에서 딱 멈췄다. 지금도 무릎의 상처를 볼 때면 그때 시간이 생생하다. 감사하다.

큰아버지 산소에서 벌초를 할 때다. 예취기를 힘차게 돌렸는데 잠자고 있던 땅벌들이 일제히 공격모드로 날았다. 동생네 막둥이가 땅벌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매년 벌초는 이런 사연들로 가득하다.

이제 곧올재로 벌초하러 가지 않는다.

도로변에 가깝고 햇볕 잘 드는 곳에 선산을 마련했다. 어머님 생전에 선산을 조성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좋다, 참 좋다’고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번엔 벌초를 위해 대장간에서 호미를 몇 개 샀다. 잔디 사이에 올라온 풀을 무자비하게 파헤치고 잔디를 사수해야겠다.

벌초 가는 길은 이제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아직 벌초 일정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올해는 벌초에 새 식구가 늘었다.

며느라기가 벌초에 함께 하는데 호미를 잡게 할지 깎은 잔디를 치우는 일을 맡길지 고민이다. 벌초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것인데 어쩌겠는가. 벌초에는 남녀노소가 없이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을...

외삼촌이 전화가 왔다.

‘정훈아 집에 한 번 와라’ 이것저것 물어볼것이 있다는 목소리였다. 삼촌은 해를 넘길 때마다 산소 관리에 대한 고민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서울에서 사업을 잘하고 있다. 벌초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고향에 묻혀야 하겠는데 벌초가 걱정이다.. 한 해만 건너뛰어도 잡풀과 아카시아 나무들로 어디가 산소인지 구분도 힘들어지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 그냥 우리 선산으로 오셔요”

삼촌은 잘 정돈되고 널찍한 산소를 맘에 들어 하셨었다.

삼촌은 걱정이 사라진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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