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태 진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85. '로빈슨 크루소'에서 벗어나야

우리가 소비하는 대중문화 속에는 알게 모르게 서구우월주의가 숨어있다.

그러한 작품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구 문명이 우월하다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피부색에 따라 인간의 우열을 나누려는 사고는 21세기에는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될 잘못된 사상이다.

그런데 영화나 문학 속에서 아프리카는 주로 백인들에게 도움을 받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백인이 아니면 현상을 타파할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또한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서구인의 눈으로 본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지며 현실과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특히 고전으로 알려진 작품들에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같으니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다니엘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는 내가 어릴 적에 가장 좋아했던 소설이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섬을 개척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으며 나도 언젠가 무인도에서 독립적으로 살아보는 꿈을 꾸곤 했다.

성장한 후 어린이용 편집본이 아닌 완역본 ‘로빈슨 크루소’를 읽은 나는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날 것 그대로의 서구우월주의가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1719년에 출판된 ‘로빈슨 크루소’는 근대 영국 소설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책이 출간될 당시는 대서양 노예무역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때였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 따라 책 속에는 인종차별적인 장면들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모험 초기에 로빈슨은 무어인에게 잡혔다가 탈출을 시도한다.

이때 그는 노예 소년 1명에게 자신의 탈출을 도와주면 해방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탈출에 성공한 후 로빈슨은 어처구니없게도 소년을 포르투갈 선장에게 팔아버린다.

로빈슨의 인면수심한 행동에 대한 노예 소년의 반응이 가관이다.

소년은 로빈슨에게 좋은 주인을 소개시켜주어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빈슨은 자신이 소년을 선한 주인에게 팔았다고 기뻐한다.

당시 서구인들이 노예를 다신들과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거래가 가능한 상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인이 결정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야 하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노예, 심지어 자신을 좋은데 팔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자기 삶이라는 건 전혀 없는 소유물로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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