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에 산불이 발생하면서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경험했다. 국가적 재앙에 가까운 피해가 발생했지만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 어려움을 해결해나가기 보다는 ‘니 탓이요’, ‘네 탓이다’를 반복했다.

가수 아이유가 고성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이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아이유의 기부가 수상하다’는 글을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유했다.

당사자의 당혹함은 두말할 것이 없겠고, ‘초록우산’측도 해명메시지를 내면서 기부문화가 혹여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해야 했다.

아이유의 기부는 고성산불 다음날 즉각적으로 이뤄졌고, 이를 계기로 많은 연예인들과 기업인들의 기부릴레이가 이어졌다.

왜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가 이렇게 양분되고 이분법적인 사고에 갖히게 됐을까.

외국에 나가보면 교민사회의 위축과 중국인들의 지역사회 장악력의 블랙홀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나라의 국민성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뉴질랜드에서 10여 년 살다온 한 교민은 이런 경험을 들려줬다.

“뉴질랜드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하나가 있었는데 장사가 잘 됐었다.”

“한국에서 교민들이 뉴질랜드에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마트가 2개 정도 생겼는데 모두 한국인들이 창업했다.”

인구는 정해져있는데 이익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사업이 예전만큼 될리 만무하다.

우리는 옆사람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아니 파괴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중국인들이 없던 나라에 중국인들이 한 명 두 명들어오는데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방문을 해보면 그 지역 전체가 중국인들의 차이나타운으로 변해있는 경험이 참 많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한국인들은 그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소통하고 연합하는 부분에 서툴다. 혼자 죽자 노력하는 형이다.

반면 중국인들은 서로 이끌어주고 소통하며 한 무리가 되는 부분으로 사회를 형성해 나가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유가 ‘초록우산’에 1억 원을 기부했다. 당연히 존경받을 행동이고 귀감이 되는 활동임에도

“아이유의 기부가 수상하다.”

“왜 아이유는 기부만 하면 ’초록우산‘에만 하냐.”

“강원산불 피해자들을 보면 어린이는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보이는데.”

이런 말을 내가 대단한 걸 발견이라도 한 듯 온라인상에 아무 생각 없이 올린다. 이분은 기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초록우산’은 해명을 해야만 했다. 산불이 발생하자 ‘초록우산’은 현장으로 즉시 달려갔고, 산불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었고, 조손가정이나 시설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모른다.

‘초록우산’은 당황했다. 행여나 이런 여론 때문에 ‘초록우산’에 기부하는 회원들의 기부가 위축된다면 재단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많은 어린이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의 거부들은 기부문화에 익숙하다. 흔히 최고 부자로 알려져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친히 ‘빌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이 재단에 천문학적인 기부를 하고 있다.

많은 거부들이 본인이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에 기부를 한다. 그리고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침마다 보는 단어가 있다.

“나눔은 행복입니다” ~^^

화장대에 올려진 나눔 모금함에 적어둔 말이다.

“나눔은 행복입니다”

정말 나눔은 행복일까. 나눔을 실천해보면 누구든지 정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단법인 코코넛의 모금 저금통이다. 요즘 이놈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코넛은 흔히 아프리카에서 생명수로 통한다. 그 코코넛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코코넛 사단법인에서 현재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NGO활동의 특성상 외국에 많이 나가고 국내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후원활동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나눔이 행복인 것을 코코넛이 나에게 알려주고 깨우쳐 줬다.

모두에게 코코넛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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