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홍농읍 가곡1리 황곡마을

▲ 지난 17일 만난 황곡마을 사람들, 첫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주기용 마을이장이다.

누런 개가 누운 형국인 ‘황구지’무술년 황금 개띠의 해와 걸맞게 영광지역 내 개(犬)지명을 가진 마을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영광군 홍농읍 가곡1리에 위치한 황곡마을. 누런 개가 앞발을 뻗고 비스듬히 누웠다는 형국으로 ‘황구지’라 불렸다는 이곳은 마을에서 ‘황곡’보다는 황구지라 불려야 마을 분들이 이해한다.

지난 16일 이슬비가 내리는 오후, 영광읍에서 출발해 법성면을 지나 약40여분이 지나 도착한 마을에 눈에 띄는 것은 오래된 나무와 쉼터였다. 옆으로 난 길을 통해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몇 군데의 집에 옛스런 벽화가 담에 그려져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2011년 즈음 전남대 대학생들이 벽화 봉사 일환으로 마을 곳곳에 다양한 벽화를 그렸다. 이어 다른 마을과는 달리 골목마다 가까이 붙어있는 집들은 조그만 마을이지만 아담했다.

이곳은 420여년 전 장성군 삼계면에서 주규(周圭)라는 사람이 1590년 초 피난 와서 거주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됐다. 주씨가 자가일촌을 이루다 6.25 전쟁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들어오면서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살고 있다. 현재 마을엔 전체 논 16ha, 밭14ha정도이다. 마을에는 현재 남성 32명, 여성 30명으로 총 62명, 22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 마을 두부공장

마을 기업·정원, 아담한 장수마을이곳은 10분이면 마을 전체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밀집돼있어 마을 경로당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경로당에 들어서니 마을 어르신들과 주기용(71) 마을이장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마을에 대해서 빠삭한 아재가 있는디, 집에 상수도 파이프가 터져가지고 못 왔제” 주 이장님은 아쉽다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 마을이 장수마을이라 해서 마을에 화단도 정리하고, 나무도 많이 심어서 아담하게 꾸몄어. 마을이 보시다시피 작은 마을이제” 이 마을은 농촌진흥청의 ‘11~13년 농촌건강장수마을로 클린 농촌을 만들고자 마을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마을 가꾸기를 추진해온 마을이다.

현재 마을기업으로 2012년 신축된 두부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에서 직접 키워 생산한 콩으로 두부를 쪄서 판매하고 있다. 또 마을 중앙에는 아담한 마을 정원이 위치해 독특한 모양의 누각이 눈에 먼저 띈다. 이후 2015년 ‘함께 가꾸는 농촌운동’의 일환으로 마을 꽃밭 제초작업과 마을 환경정화 활동을 실시해 마을 길가에는 철쭉이 심겨져 있다.

▲ 마을 정원

“장구도 치고 놀기도 혀”마을 옛날 얘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윤상민(76)어르신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디, 해먹을 게 너무 없었어. 그때 나무를 해다 팔아서 먹고 살았제. 그 시절에는 30원이 가장 큰 돈이었어. 신발이 없어 맨발로 나무를 해서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그렇게 쑥도 캐서 죽쒀먹고, 살아왔제. 20리를 가서 나무를 해도 밥을 제때 먹지 못해 곯을 때도 많았어”라고 말했다. 이에 이순덕(76)어르신은 “쑥밥은 양반이제 그것도 못 먹을 때도 많았어. 옛날 얘기하면 눈물 밖에 안 나오제. 지금은 밥 먹고 산께 잘살제..”라고 말했다.

옛 이야기기가 한창이던 때, 곽이순(76) 어르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분이 우리마을 분위기 메이커야. 말도 재미나게 하고 흥 나게 노신당께” 마을 어르신들은 곽 어르신이 들어오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냐며 곽 어르신이 손사레 쳤다. 옆에 앉아 있던 이순덕 어르신은 “재밌으려면 우리 장구도 치고 놀기도 혀 ”라고 말했다.

장구 실력 한 번 보여 달라는 요청에 어르신들은 무슨 장구냐며 멋쩍게 웃다 마지못해 방에 정리한 장구를 2개 꺼내들었다. 주 이장님이 손에 꾕가리를 들고 서서 신명나게 장단을 살리며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순덕 어르신이 꾕가리 소리에 맞춰 연주하고, 곽 이순 어르신이 “아이고. 떨려죽겠구마”라는 말과 함께 신나는 장단에 맞춰 흥겨운 춤사위를 선보였다. 이장님의 꽹가리 소리에 어르신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즐겁게 웃었다. 꽹가리소리, 장구소리, 웃음소리 등 이날 분위기는 작은 축제를 연상케 했다.

점심시간이 다돼 어르신들은 식사하고 가라며 점심준비를 나섰다. 옆 마을에서 갖다준 떡이라며 쑥떡과 가래떡을 한그득 상에 차려주셨다. 어르신들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식사 후 마을 이장님은 마을 한 바퀴를 돌며 마을을 설명해주셨다. “우리마을이 76년도에 야산개발을 해서 그렇지만, 원래는 저 위로 소나무가 마을을 둘러싸고 밑에는 대나무 밭이 펼쳐져 아담했제”라며“여기는 봄이면 꽃이 활짝 펴서 참 예뻐. 그때 한번 놀러오게”라고 말했다. 아기 소리가 들린 지 꽤 오래된 마을이지만, 장구소리에 하나에도 웃음 꽃 잃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마을을 들리고픈 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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