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날씨는 쌀쌀했고, 깨끗했다.

한여름 날씨이던 한국을 뒤로하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북유럽행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외국 여행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 했는데 코로나 엔데믹시대를 맞으며 외국행이 열리기 시작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에 따르면 유럽의 대부분 나라에서 코로나 관련 방역이나 규제는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도 타국에서 귀국 시 받아야 했던 유전자 증폭검사(PCR)를 받지 않아도 된다 발표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쉽게 다녀오기 부담인 북유럽을 선택했다. 서유럽에서 전에 여행 중에 추억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었지만, 산악지대인 북유럽으로 정했다.

직항이 없어 두바이를 경유하는 항공사를 선택했다. 현지에서 이동이 편해야 하기에 여행 가방은 기내 가방을 사용했지만, 수화물로 코펜하겐으로 바로 부쳤다.

두바이에서 대기시간 3시간 정도 보내다 코펜하겐으로 가는 일정이다.

코로나 정국에 장롱 구석에 박혀있던 여권은 만료 기간을 넘기거나 잔여기간이 부족한 상태도 있었다.

여권 발급시간은 3일 정도, 우리 여행은 벼락치기 2일 후에 출발. 방법을 찾다 긴급여권을 알게 됐다. 당일치기 발급인데 여행에 제약들이 있었다.

긴급여권으로 갈 수 있는 나라를 검색해서 덴마트, 스웨덴, 노르웨이로 일정을 잡고 출국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주 대형으로다가.

환승구간에 머물다 출국인데 두바이 간이 출국 심사에서 큰아들과 셋째 종아, 넷째 설아는 탑승할 수 없다는 것. 담당 직원은 전형적인 아랍인 인상이었는데 나에게 걸리면 어림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무적인 언어를 쏟아냈다.

구여권을 보여주며 최대한 설명을 하는데도 이 직원은 자기들 업무공간에서 나가라며 환승 구역으로 밀어내 버린다….

다른 승객들 탑승 절차가 마쳤기 때문에 비행기는 곧 이륙하는데 어떡해야 하는지 머릿속은 슈퍼컴퓨터가 돌아가는 속도로 대책을 세워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긴급여권은 덴마크에서 받아 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은 보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상급직원이 왔다. 일말의 기대를 하면서 표정을 살피는데 엄중하고 사무적인 표정이다.

“덴마크에서 긴급여권은 안 되니, 돌아가야 한다.”

수화물로 실은 가방들은 곧 코펜하겐으로 이륙하는데 어떡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인정사정없어 보이는 아랍인 스타일 직원이 모니터 화면은 보더니 “OK, OK, OK”를 외쳤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감사가 넘쳤고, 7명 식구 모두 백지장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그렇게 코펜하겐행 비행기는 몇 시간 후에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 착륙했다.

여행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대화는 처음 여행했던 미 대륙 횡단에 대한 추억들이다.

고1 큰놈과 중3 둘째 딸과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자동차 여행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선물하고 있다.

당시는 3명이 한 달간 여정이었다면 이번 북유럽 여행은 큰놈이 장가를 가서 함께한 며느리까지 정원 7명의 여행으로 인원이 늘었다는 차이 정도다.

스뫼르브레드, 오픈 샌드위치.

이것 하나면 덴마크를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손바닥 반 크기인 호밀빵에 절인 청어나 훈제 연어, 작은 새우, 샐러드 등을 올리고 다시 빵을 올리지 않은 샌드위치가 덴마트 대표 음식인 스뫼르브레드 이다.

여행 중에 먹는 아침은 언제나 가장 기억에 남는데 코펜하겐에서 아침은 며느리가 선택했다.

“후기가 아주 좋고,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예요”

코펜하겐 시내는 걷기에 좋고 넓지 않아서 걷거나 자전거로 여행하기에 매우 좋은 도시였다.

어떤 음식인지 모르지만 15분을 걸어서 가는데 맛있겠지.

몇 년 동안 여행을 못 했는데, 이 아침 식사로 그동안의 칩거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 벌써 입에 침이 고였다.

핸드폰에서 알려주는 지도를 따라서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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