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라이브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1993년 작품이다.

우루과이 럭비팀이 칠레로 가는 중에 비행기가 안데스산맥에 추락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비행기가 추락하며 고통 속에서 생존하는 이야기지만 몇 번을 봐도 교훈이 되는 영화라 생각한다.

최대 명절을 앞둔 시점에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최근 이들의 이야기가 자주 생각난다. 눈으로 덮인 해발 3,500m의 고지에 동체만 남고 비행기는 완전히 파괴 됐다. 영하 40도에 이르는 살인 추위와 싸워야 했다.

2017년 안데스산맥을 지프를 타고 넘었던 적이 있다. 칠레에서 볼리비아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르헨티나 최남단 땅끝 우수아이아에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아메리카대륙을 종단하는 여행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넘기에는 너무 험한 길이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지나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을 가기 위해 지프를 이용해 안데스산맥을 넘는 여정을 택했다. 모르고 도전하면 용감한 법이라 했던가.

한라산의 고지가 해발 1,943m인데 한라산만 등반해도 어지럼증이 생긴다. 3,500m의 고지는 접해볼 수 있는 고지가 아니다. 지프를 타고 여길 넘는 코스가 있다고 해서 도전해보자 하는 단순 생각에 지프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에 산맥 입구에서 볼리비아 입국심사를 마치고 정상을 향해 달렸다. 노천 온천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렸다. 이 길을 반복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현지 기사는 연신 코카잎을 씹었다.

고산병을 이기는 현지 삶의 노하우인 셈이다. 우리에게도 한 움큼씩 주며 계속해서 씹다가 뱉으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얼마를 달렸을까. 아들이 뒷자리에 앉아 있다 쓰러져 누웠는데 얼굴이 황달 색으로 변해갔다.

고산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병인지 겪어보지 않고선 말을 할 수가 없다. 3,500m의 고지를 달리는 지프에서 멀미와 동반된 고산병은 생과 사의 갈림길임이 분명했다. 시간이 지체되면 산맥을 못 넘을 수도 있기 때문에 쉴 수도 없다.

그렇게 안데스산맥을 넘었다.우유니 사막에 도착했을 땐 정신을 차릴 때까지 토했다. 위장이 뒤틀리고 모든 장기가 꼬이고 내부 모든 위액을 다 토해냈다. 이틀을 몸져누워 쉬어야 했다. 한여름에 넘는 안데스산맥이 이러했다.

영화 얼라이브에서 해발 3,500m의 고지에 추락한 이들은 한겨울에 영하 40도의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은 추위보다 배고픔이었다고 한다.

눈보라에 시야도 어려운 곳에서 먹을 것이 없었다. 이들은 결국 사고로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먹기로 했다. 영하 40도의 고통 속에서 72일의 사투 끝에 16명이 생존했다.

이들은 죽은 아내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고통을 이겨냈다고 한다.

구조 당국으로부터 구조를 중단한다는 소식을 전파가 약한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다. 안데스산맥을 넘어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데 걷고 또 걷고 쓰러진다. 쓰러져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동료에게 말한다.

“못하겠다고 하지마”

“일어나서 걸어”

안데스산맥은 아닐지라도 우리 인생도 쓰러지고 도저히 더 갈 수 없겠다는 어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내게 하는 말이 아닐까

“못하겠다고 하지마”

“일어나 걸어”

사고 후 몇 년이 흘렀을까. 생존자들의 근황을 추적한 내용이 언론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정치인, 사업가, 운동선수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다.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해발 3,500m의 고지의 영하 40도의 추위와 굶주림에서 72일을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내려왔을 때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모두 끝이 나 있었습니다. 세상은 행복한 일 투성이었습니다.”

안데스산맥의 극한의 고통에서 72일을 보내고 세상에 내려왔을 때 이들은 세상에서 고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온갖 행복한 일 뿐이었다고....

A380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수많은 시간들이 스쳐 간다.

전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시던 어머니, 8시간의 수술을 잘 견디시고 회복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몸이 불편했지만 휠체어로 모시면서 일본 여행을 다녀왔었다. 어머니는 그리고 얼마 동안 계시다 먼저 주님 품에 가셨다.

지금 하는 사업은 부동산 개발업이다.

어려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어떤 시야로 보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세상은 행복한 일들 뿐이기에...

코펜하겐으로 곧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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