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태 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103. 환경이 중요해

2017년 9월, 탄자니아와 케냐 사이의 국경 검문소 나망가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당시 나는 탄자니아에 단기 출장을 갔다가 케냐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권을 내밀고 통과를 기다리는 나에게 검문소 직원은 짐 가방을 열어봐야겠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영악한 관리들이 늘 그러듯 역시 뭔가 트집을 잡아보려는 거였다.

여행 몇 년차인가, 문제 될 것은 애초에 소지하지 않아 주저 없이 가방을 열어 보였다.

다레살람에서 시연했던 전자 장비와 길벗 하려 넣어 놓은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책 한 권, 이 빠진 낡은 전기면도기, 그리고 출장 중 입은 꾸리한 빨래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

아무 문제 없을 잡동사니 꾸러미였지만 그날 케냐의 공권력은 나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이 비닐봉지를 압수하겠소.”

“잠깐만, 뭘 압수한다고요? 비닐봉지?”

“그래요. 이제 케냐에서는 비닐봉지를 사용할 수 없어요. 이렇게 큰 건 더욱!”

그가 강조한 대로 내 빨래 봉지는 꽤나 큼직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었다.

나와 아내가 신혼여행 첫날 묵었던 제주 R 호텔에서 가져온 세탁물 주머니였던 것이다. 크고 질긴 호텔 세탁물 주머니는 여행용 빨래 봉지로 딱 맞았다. 작은 구멍 하나 내지 않고 소중히 사용해온 녀석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불평했다.

“이봐요, 이건 마약에 중독된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그냥 빨래 봉지라고요. 세계 곳곳에 가지고 다녔지만 아무도 이걸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만약 당신이 여기서 비닐봉지를 버리지 않고 나이로비에 가면 경찰에 체포당해 재판받을 테니까 버릴지 말지 잘 생각해봐요.”

그의 말투는 자못 진지했다. 애꿎은 비닐봉지 때문에 경찰에게 붙잡혀 고생할 외국인을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국경 검문소에 6년 지기 빨래 봉지를 두고 와야 했다. 냄새나는 빨래들을 가방에 욱여넣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2017년 8월 28일부터 케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닐봉지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케냐 정부는 가볍고 저렴한 이 물건을 제조, 판매, 사용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적발되면 4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거나, 혹은 미화 4만 달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4만 원이 아니라 4만 달러다. 우리 돈 4,000만 원이 넘는다.

케냐 일반 노동자의 월 소득이 20만 원이 채 못 되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액수의 벌금이다.

경찰은 거리에서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사람을 체포할 수 있고, 비닐봉지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를 수색할 수도 있다.

국경 검문소 직원은 그런 상황을 염려하며 내게 조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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