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과 검은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중년 여성들이 앞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가볍게 착용한 마스크는 그동안의 삶에 대한 품격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여유가 느껴진다.

테이블 한쪽의 거의 빈 잔엔 오렌지주스의 잔상이 남아 있다.

혼자 앉아 글을 써 내려가는데 주변의 시끌벅적과 나름 잘 어울린다는 자기 최면에 빠져들며 인연에 대해 스쳐 가는 필름들을 몇 자의 글에 옮기려 한다.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스쳐 가는 인생의 연속성이고, 그 인연들이 만나서 사회를 이루고 삶의 가치를 알려줄 거라는 작은 확신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인연을 생각하는데 먼저 떠오르는 건 여행이라는 단어다.

필자에게 여행이란 단어에 빼놓을 수 없는 나라는 세계의 문화와 경제를 대표하는 미국이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미국을 동경하게 됐다.

큰 놈 지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둘째 지수가 중학교 3학년에 처음으로 미 대륙을 횡단한다며 여행을 떠났다.

뉴욕으로 들어가 로스앤젤레스로 나오는 일정이었는데 지금도 당시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지도 한 장 펴서 다음 일정에 맞춰 이동하는데, 여행이라기보다는 극기 체험, 미 대륙 횡단보다는 미 대륙 탐험이라는 표현이 맞지 싶다.

새벽에 숙소에 돌아가는 길을 잃어서 흑인들이 포진해 있는 브루클린의 새벽길을 헤매던 일부터 체감온도 50도를 웃도는 서부 사막의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기름이 떨어지기 직전의 고통은 영광 촌놈들의 심장을 함머드릴로 부숴버릴 기세였다.

이후, 대학 1년 과정을 마치고 지현이는 아르헨티나로, 지수는 아프리카 말라위로 1년의 봉사활동을 떠났다.

아르헨티나는 정확히 지구의 반대편이고 시차도 12시간이다. 봉사활동 1년의 세월이 흐를 즈음, 이제 셋째 종아와 넷째 설아까지 아들 찾아 삼만리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열정의 나라 남미, 탱고와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1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계획에는 없었지만, 아르헨티나 땅끝으로 내려가서 대륙의 가장 위쪽 캐나다 밴쿠버까지 갔다가 LA에서 귀국하는 여정으로 바꿨다.

남미의 많은 나라를 뚫고 넘어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달렸다.

지현이가 1년간 배웠던 스페인어는 여행 가이드하기에 부족하지 않았기에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정확히 1년 뒤 지수가 봉사활동을 하는 중부 아프리카 말라위로 날았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했던 말이 있다.

우연히 말라위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있었다며 딸을 그곳에 보내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냐고 물었다.

큰 딸 지수는 아프리카에서 1년을 보내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해서 돌아왔다.

물론 지현이를 포함해 모든 식구가 말라위를 방문했고 아프리카 여행은 덤으로 얻은 포상과도 같은 시간이 됐다.

세계 어디를 가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고, 좋은 추억이 됐다.

오래전 선을 보고 결혼하는 데까지 2주가 걸렸다.

선을 보고 2주 만에 결혼하는데 정신은 없었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선하심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믿음으로 인도를 받았는데 좋은 결실을 맺었다.

아들딸, 아들딸, 이렇게 네 놈이 지금도 시끌벅적하다.

셋째를 얻었을 때 이제 뭔가 갖춰지는 느낌이었고, 넷째를 봤을 때 뭔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쯤이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27살에 이뤄진 일들인데 이제 큰 놈 지현이가 이 나이가 됐다.

큰놈이 며칠 전 선을 봤는데 아들도 아버지와 경쟁하듯 결혼을 전광석화처럼 진행하고 있다.

인연은 이렇게 오는가. 조심스럽게 생각이 스쳐 간다.

넷째를 얻은 후 뭔가가 부족함이 있었는데 이제 그 부족함이 메워지고, 갖춰지는 느낌이다. 인생은 이런 인연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추억들이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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