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태 진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92.억지 고집으로 변질돼

문제는 저항문화가 꼭 옳은 일에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어떤 이들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서도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시위였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폭동으로 번지는 경우가 흔하다.

젊은 세대에게서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진다. 흥분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무의미한 화풀이일 뿐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않고 분출하는 폭력적인 행위를 멋지게 여기는 듯하다.

2015년, 100개가 넘는 케냐 중고등학교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방화범은 대부분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불을 지른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학교 급식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급식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먹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 기숙사에 불을 지르고 교무실 유리창에 돌을 던진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외에 교사에게 혼이 났기 때문에, 축구 경기에 져서, 교사가 특정 학생을 편애해서 등등 각종 터무니없는 이유로 인해 화가 난 학생들은 학교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로 핀다면 고등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싫다고 교무실에 불을 지르거나, 여중생들이 학교에서 화장을 하게 해달라며 학생주임교사를 폭행했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케냐의 청소년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학교에 화풀이를 했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성향은 대학교에서 ‘만개’한다.

케냐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국립 나이로비대학교는 입학하기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시위를 자주 벌이는 것이로도 악명이 높다.

대학생들의 집단행동은 고등학생들보다 한층 과격해서 도시의 기물을 파괴하거나 돌을 던지고 방화를 하는 등 폭동으로 번지기 일쑤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젊은 지성인들이 밥 먹듯 시위를 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국가의 밝은 미래와 정의사회구현을 위한 게 아닐까 짐작되지만, 막상 그들의 명분을 아게 되면 당황스러워진다.

케냐의 대학가 소식을 주로 다루는 매거진 릴의 기사를 인용하면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이렇다.

학자금대출 지급이 늦어져서, 기숙사에서 혼숙을 못하게 해서, 학교 근처에서 콘돔을 구하기 어려워서, 선거철에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려고, 어려운 과목의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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