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태 진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91. 식민지배 이겨낸 저항정신

저항 초기에 남아공 흑인들은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주의로 맞섰다.

하지만 남아공 백인들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경찰들은 비무장 상태의 군중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학살했다.

평화시위가 번번이 폭력적으로 진압당하며 넬슨 만델라는 ‘민족의 창’이라는 군사조직을 지휘하고 반란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만델라는 그 법정에서 미리 준비해간 성명서를 장장 5시간에 걸쳐 쉬지 않고 읽으며 자신들이 폭력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폭력을 사용한 것은 평화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모든 통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며, 폭력을 원치 않았지만 백인 정부의 박해로 다른 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델라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남아공 사람들은 투쟁을 이어갔다.

급기야 1976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소웨토 폭동과 그 후 일어난 일련의 시위에서는 사망자 600명, 부상자 4,000여 명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언제 비상사태가 터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유엔과 국제 사회는 시대를 역행하는 인종차별을 그만두라며 남아공에 제재를 가했다.

결국 국내외의 압박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백인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중단을 선언한다.

그리고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자유를 억압하려는 자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을 이길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케냐나 남아공 등 저항문화를 가진 나라의 아프리카 인들은 자신이 불합리한 일을 당한다고 느끼면 회사나 정부에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현한다.

소위 말하는 돈과 권력을 이용한 갑질을 경계하는 것이다.

만약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단체 행동도 불사한다.

신문에는 심심치 않게 의사 파업, 교사 파업, 근로자 파업 등 각계각층에서 벌이는 실력행사 소식이 올라온다.

파업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혼란이 생기고 피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정부에서는 되도록 폭력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려 노력한다.

케냐에서는 취약계층이 기득권층을 신고할 때 신고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법률적 장치도 만들었다.

기득권층은 섣불리 부정을 시도하다가는 랑아타로드 초등학교 사태의 호텔 주인처럼 씻을 수 없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상대가 약자들이라도 조심스러워한다.

이처럼 밟으면 꿈틀하는 아프리카의 저항문화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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