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태 진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90. 식민지배 이겨낸 저항정신

광대한 땅에서 자유롭게 살던 케냐인들은 영국이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이후 식민지의 가난한 하층민으로 추락해버렸다.

백인 지주들은 금싸라기 옥토에 들어앉은 후 본래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을 거친 광야로 쫓아냈다.

식민지배 아래서 사람들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입에 풀칠만 간신히 할 수 있는 빈곤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러한 현실이 불합리하다는 걸 느꼈다.

불공정한 지배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케냐인들은 백인들과 대화를 시도했고, 영국 정부에 항의도 해보았다.

하지만 백인들은 애초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

영국인들은 항의하는 케냐인들을 감옥에 가둬 고문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강압적인 지배는 케냐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영원히 묶어놓지는 못했다.

억압에 견디다 못한 민초들은 단결하여 저항했다.

태업과 파업을 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지주들의 재산을 파괴하거나 목숨을 노렸다.

마우마우라는 무장 게릴라 세력을 조직해 영국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케냐 민중은 자신들이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가만히 있는 바보가 아님을 지배자에게 보여주었다.

저항을 시도한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을 당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런 희생을 겪으며 케냐인들의 가슴에는 자신을 억누르는 이에게는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저항정신이 자리 잡혔다.

세월이 흘러 1963년, 케케냐는 독립했다. 백인들은 물러났지만 새로운 지배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주인의 피부색만 바뀌었을 뿐 가난한 이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연히 독립 이후에도 케냐 민중의 저항을 이어갔다.

지주들의 횡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들은 일어나 싸움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합당한 요구를 묵살하는 기득권 세력을 향해 통쾌하게 한 방 먹여주면 그제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저항과 폭력은 약한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기득권에게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저항문화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이 시행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공은 격리·분리를 의미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시기였다.

인구 16%의 백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특권을 갖고 나머지 84%의 비백인(흑인, 유색인, 인도인)을 정책적으로 착취하던 시기다.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백인과 비백인 간의 분리 작업이 이루어졌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차별이 정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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