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79. 포장된 식민지 정책

1783년, 미국독립전쟁에서 패배하며 자존심을 구긴 영국은 노예무역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노예무역의 참상이 알려지며 이에 대한 비난여론도 거세지고 있었다. 마침내 영국은 1807년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영국의 뒤를 이어 프랑스가 1828년 노예제를 폐지했고, 미국은 남북전쟁을 치를 끝에 1863년 노예제를 공식적으로 없앴다.

사실 이 시기의 영국은 산업혁명의 무르익고 있었기에 예전처럼 노예 노동력이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다. 대신 상품을 만들 원료와 판매할 시장이 필요했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아프리카를 통째로 식민지로 삼는 것이었다.

이미 18세기부터 인도 대륙의 식민화 계획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던 영국에게는 어려울 게 없었다. 1806년 남아프리카에 정착해있던 네덜란드계 백인들을 쫓아내고 케이프식민지를 세웠고, 1850년 지금의 나이지리아 지방에 상관을 확보하고 군대를 보냈다.

1882년에는 인도로 가는 길목인 수에즈 운하를 확보하기 위해 이집트를 점령했다.

프랑스도 알제리와 서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벨기에는 탐험가 스탠리의 활약으로 콩고의 드넓은 땅을 차지했다.

서구 열강들은 188년과 1885년에 걸쳐 열린 베를린 회의를 통해 각 국가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차지할 구역을 분할했다. 이때 나누어진 구분선이 현대 아프리카 국경석의 기초가 됐다.

열강들은 잔악한 노예 상인에게 고통 받으며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살아가는 아프리카인들을 구제하자며 인도주의를 내세웠다. 노예무역으로 부자가 된 이들이 이제는 노예무역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통째로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본격적인 식민지 경영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서구 열강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자원이 풍부한 땅을 손에 넣어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었다. 철도와 항만 같은 식민지의 인프라는 자원 수탈을 원활히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건설됐다.

예전처럼 번거로이 노예를 매매할 필요 없이 식민지 전통 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인식시키고 서구 중심의 문화와 언어를 이식하기 위해 식민 교육과 종교를 이용했다.

그 과정에서 신무기 맥심 기관총은 대항하는 아프리카인들을 가볍게 몰살시켰다. 키니네를 사용해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게 된 백인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직접 들어와 통치했다. 서구의 침략은 공공연하게 문명화 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됐다.

정작 아프리카 주민들은 손발이 꽁꽁 묶여 고통하고 있었는데도 많은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어둠의 땅’아프리카의 미개인들을 돕고 있다고 정말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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