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72. 우부갈리는 함께 먹어야 제맛

부룬디에서 현지인 친구 1명과 함께 1주일간 배낭여행을 다닐 때였다.

우리는 부룬디 남단 냔자락에 들렀다. 낯선 동양인을 발견한 동네 꼬마 녀석들이 마을 어귀에서부터 하나둘 따라붙더니 환영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반겼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나는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라도 된 듯 즐거웠다. 별난 동양인 여행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쫙 퍼졌다.

어느덧 호수 건너 서쪽 편 콩고 뒤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주민들은마을 원로인 교회 목사님에게 가보라며 우릴 안내했다. 넉넉한 인상의 목사님은 불쑥 찾아온 외국인 길손을 환대하며 기꺼이 방을 내주었다.

짐을풀고 난 후 우리는 응접실에 앉아 저녁 식사를 기다렸다. 한참을 지나 완전히 어두컴컴해진 밤이 돼서야 식사가 준비되었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부룬디의 식사 문화에는 고고한 기품이 있다. 음식을 먹기에 앞서 주인은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담아와 손님의 손에 천천히 부어준다. 주인은 노인부터 소년까지 모든 식객에게 일일이 물을 부어주며 안부를 묻는다.

만찬을 베푼 주인이 손님들을 위한 소박한 축복의 기도를 올리고 식사가 시작된다. 식탁 위에서 배구공만한 우부갈리 몇 덩이가 놓여있었다.

우부갈리는 옥수수 가루나 카사바 가루를 물에 개어 만드는 부룬디의 전통음식이다. 케냐의 우갈리, 잠비아의 시마, 가나의 반쿠와 비슷한 요리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흔히 먹는다.

화덕에서 갓 떠내온 녹말덩어리의 뜨끈한 온기가 느껴지고 하루의 피로가 손끝에서 찌르르 녹아내린다. 우부갈리를 뜯어 손안에서 조물조물 굴러 밤톨 크기로 만든다.

반찬은 카사바 나뭇잎을 빻아 삶은 쏨베라는 요리와 토마토소스에 졸인 민물 생선이었다. 동그랗게 만든 우부갈리를 반찬 국물에 푹 찍어 꿀꺽 삼킨다. 씹지 않고 한입에 쑤욱 밀어 넘기는 게 부룬디 전통 방식이다.

말랑하고 뜨끈한 반죽 덩이가 식도를 꽉 채우며 부드럽게 내려가는 느낌이 묘한 쾌감을 준다.

한국인들이 밥상에서 찌개를 나눠 먹듯 부룬디 사람들은 커다란 우부갈리를 나눠 먹는다.

허기지다고 해서 혼자 다 먹어서는 안 된다. 옆 사람이배가 고파 보이는지, 남은 양은 얼마나 되는지를 보아가며 적당한 속도로 음식을 취해야 한다.

식사를 하는 동안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격정적이기 보다는 차분한 대화가 오고간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식사 자리는 작은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한다.

식탁 위의 잔잔한 대화는 부룬디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천천히 밥 먹는 게 시간낭비처럼 여겨지곤 하는 한국과 비교해보면 한없이 느긋하고 속편한 식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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