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71. 빈민을 위한 구제활동인 셈

부룬디는 수십 년 간 내전을 치르며 부모를 여윈 고아와 남편을 잃은 과부, 그리고 오갈 데 없는 난민이 많이 생겨났다. 또한 가난한 시골에서 맨몸뚱이만 갖고 도시로 상경한 사람들도 흔하다.

거리를 방황하며 부룬디의 극빈층을 이루는 그들을 위해 정부는 해주는 게 거의 없다. 하루라도 일하지 못하면 굶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빈민들은 돈을 벌어보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가난하게 태어나 교육도 받지 못하고 밑천도 없는 그들이 직장을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극한 빈곤 속에서 조금만 생각이 어긋나면 이들은 범죄의 길로 빠지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가사도우미는 꽤 인기 좋은 직업이다.

월 급여가 우리 돈으로 2만 원에서 5만 원밖에 안 돼 후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배를 곯는 실직자 처지보다는 박봉을 받더라도 일할 수 있는 게 훨씬 낫다. 더구나 숙식도 해결된다. 어느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구한다는 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지원자가 몰린다.

고용하는 주인의 마음도 사뭇 각별하다. 집주인은 가정부를 고용할 때 단순히 돈을 주고 가사일 할 일꾼을 구한다고만 생각지 않는다.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이를 거둬들여 잠자리와 일거리를 마련해주고 자립할 수 있게 돕는 선행을 베푼다고 생각한다. 부룬디 사람들은 어떤 집에 가사도우미들이 단체로 지낼 수 있도록 집의 일부를 기숙사처럼 꾸며놓기도 한다.

처음 필벳 씨가 내게 던진 질문.

“당신은 왜 빨래를 하나요?”라는 물음은 외국인이라면 가사도우미를 돌만 한 금전적인 여유가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물었던 것이다.

그는 돈이 있는 사람이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는 건 사회적인 책임을 게을리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필벳 씨가 넉넉한 형편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가정부가 있었다. 필벳 씨는 집안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룰루랄라 신나는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집안일이 특별히 많지 않을 총각 대학생들의 자취방에도 가정부가 있을 정도니, 일반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없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주인집 가족들도 가사도우미를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도와주려고 애쓴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할 줄 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는 사회적인 호의와 심각한 가사노동 강도가 맞물려 생겨난 부룬디의 가사도우미 문화. 부룬디의 부패한 독재 정부는 국민에게 관심을 거둔지 오래다.

돌보는 이 없는 고아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가난한 국민들은 스스로 서로 도우며 끈끈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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