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MBC에서 한글날 특집으로 말의 힘이라는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막 지은 쌀밥을 유리병에 넣고 아나운서들에게 나눠줬다.

유리병에는 ‘고맙습니다’ 라는 긍정의 말과 ‘짜증나’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적혀 있었다.

실험체를 받아든 아나운서들은 긍정의 말이 적힌 병에 대고는 “예쁘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등 긍정적인 말을 했다.

반면 부정의 단어가 적힌 유리병에는 "미워", "짜증나"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들려줬다. 어떤 변화들이 생겼을까.

놀랍게도 긍정의 말을 들은 쌀밥은 구수한 누룩 냄새가 났다.

부정의 말을 들은 쌀밥은 썩은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며 썩어버렸다. 영상을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MBC는 다른 연구도 진행했는데 여기에서도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십여 명의 인원을 정해서 노인이 연상되는 30개의 단어 카드로 말을 만들게 했고, 또 젊음을 연상할 수 있는 단어를 이용해 문장을 만들도록 했다.

노인이 연상되는 단어들은 ‘해 질 녘’, ‘황혼의’, ‘은퇴한’, 전원주택‘등이었다. 반면 젊음을 연상할 수 있는 단어에는 ‘부지런한’, ‘열정적인’, ‘스포츠’, ‘승진’ 등이다.

실험은 단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고 나오는 로비에 40m의 선을 표시해두고 단어를 접하기 전과 후에 걷는 걸음걸이의 속도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노인에 대한 단어를 접한 사람들은 걸음걸이가 확연하게 달라졌는데, 단어를 접한 후 걸음걸이에서 2초 정도가 더 늦게 나왔다.

젊음을 연상하는 단어를 보고 걸음을 걸었던 사람들은 실험에 참여했던 모두가 2초 정도 시간이 빨라졌다.

심리학과 전문가들은 단어를 접하면서 우리의 뇌는 의식적으로 행동을 할 준비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말을 하고 듣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연구가 아닐 수 없다.

말을 실어 나르고 전파하는 언론인으로서 무한책임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언론은 어떤 말을 전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로 나타나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어떤가. 코로나 하면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는 않는가.

언론을 접하다 보면 백신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기만 하고,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응징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불안을 조장하고 마치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지기라도 바라는 듯한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처럼 코로나를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나라도 없다.

일본의 경우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수천 명씩 발생하고 있다. 백신을 접종하는 나라에서도 확진자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우리나라처럼 이동이나 여행에 자유로운 나라는 찾기 힘들다. 자국을 통째로 봉쇄한 나라나 인구가 적어 백신을 국민들이 모두 접종한 나라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백신은 대부분 다 접종하는 나라와 백신을 구경도 못 하는 나라들이 있는데 이게 정상적인 현상인가.

코로나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생각해보라.

내가 잘못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공동으로 함께 대처하지 못하면 코로나는 영원히 종식될 수 없게 됐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극복되지 않겠는가.

한 어머니가 있었다. 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세 단어를 마음 중심에 심어줬다.

‘괜찮아’‘좋은 거야’‘잘 될 거야’

살다 보면 시련이 올 수 있고, 극복하기 힘든 어려운 시간도 오기 마련이다.

‘괜찮다’는 말과 ‘좋은 거야’라는 말, 그리고 ‘잘 될 거야’라는 말은 이 청년을 굳세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희망의 아이콘으로 성장시켰다.

브라질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이야기이다.

성경 민수기 14장 28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은 자기에게 들리는 대로 그대로 행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가.

그럼 ‘행복해지고 싶다’ 이렇게 보다는 ‘아!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해보자. 그럼 행복한 삶을 살 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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