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한상훈 대마면장

인생의 길에는 많은 갈래가 있다. 젊은 시절 수 많은 갈래 속에서 어디로 가야 정답인지 찾을 수 없어 방황했다.

백두대간 종두를 하고 국토대정을 하면서 세상을 알아갔지만 인생의 길에 대한 정답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어디로 걸어가야하는지 알려주신 고마운 분이 있다.

꽃이 피고 햇살이 포근히 감싸는 21일 오전 대마면사무소에서 한상훈(62, 대마면장)씨를 만났다.

한 씨는 군서에서 태어나 군남초,중,고를 졸업한 영광 토박이로 지금은 대마면장을 맡고 있으며 슬하에 3남매를 두고 있다.

현재 한 씨는 대마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어렸을 때는 직접 건물을 짓고 싶어 건축학과를 가고 싶었다.

“부모님은 평범하게 일하시면서 우리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보내줄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대학 진학을 반대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서운함이 먼저 들었습니다.”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없게 된 한 씨는 곧장 집을 나와 친척이 있는 인천행을 결심했다. 취업이 어렵다면 배라도 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걸어서 터미널로 향하던길 한 씨는 동광세차장에서 일하는 또래 친구들을 발견했다. 즐겁게 일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한 씨는 문득 인천에 갈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한 씨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저 친구들처럼 재밌게 일하면 안될까”하고 문득 인천에 갈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한 씨는 바로 발걸음을 옮겨 세차장 사장님께 찾아갔다.

사장님은 갑자기 나타나 일을 시켜주라는 어린 청년에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한 씨의 간절함을 보았을까. 사장님께서는 당시 월급 15000원에 숙식까지 제공을 해주었다.

한 씨는 일을 하며 다시 대학 진학의 꿈을 꾸었고 마침내 동신전문대 지적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비록 원하던 과는 아니였지만 이 선택은 공무원의 길까지 이어졌다.

한 씨는 공무원으로서 성공하고 싶었다. 젊은 날의 혈기로 무엇이든지 먼저 시도를 하고 모든 일에 나섰다. 하지만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군대를 다녀온 후 알게됬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로 고위 공직자 가족들에 대한 혜택이 많았다. 군의 의무를 하는 동안 9급공무원이었던 그 대신 들어온 것은 8급 신입이었다. 승진의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한 씨는 공무원의 길을 그만두려 했지만 주변의 만류에 승진은 포기한채 그저 주어진 일에 몰두했다.

“억울하기도하고 이제 이 자리에서 머물러야 겠구나 하고 포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길을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을 다독이곤 했습니다.”

현실의 부조리 앞에 의지가 꺾인 한 씨가 서동석 씨를 만난 것은 40대 쯤 종합민원처리과에서였다. 당시 서동석씨는 종합민원처리과 계장이었다.

한 씨는 서 씨에 대해 ‘바위에서 나오는 샘물같이 맑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서 씨는 누구보다 청렴한 공직생활 하며 한 씨에게 민원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봉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했다.

당시 승진이나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했던 한 씨에게 서 씨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2001년에 행자부와 SBS 공동주관으로 민원봉사대상 뽑았다.

서 씨는 물심양면으로 한씨가 상을 받을 수있게 도와 한 씨는 본상을 수상했다. 이에 따라 1계급 특진을 했으며 5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상금은 서 씨를 따라 지역사회에 기부했다.

한 씨는 서 씨에 대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준 멘토”라고 말했다.

이후 한 씨는 기획예산실 감사담당으로 영광 청렴도 개선에 앞장서며 2015년 청렴도 18위에서 2017년 1위로 올리며 누구보다 깨끗한 영광을 만들기 위해 앞장섰다.

인생의 멘토의 발자취를 따라 살고 싶다는 한 씨. 그는 서 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삶의 방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인생의 멘토로써 많이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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