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58. 부족주의 넘어서야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 내의 국경선은 100여 년 전만 해도 없었다. 식민 지배가 들이 대륙을 조각내 나눠 갖기 위해 지도를 쳐놓고 선을 그으며 국경이 생겨났다.

아시아나 유럽의 여러 국가들처럼 오랜 세월 동안 민족들의 이동 등에 따라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이다.

정작 그 땅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사회문화적인 요인은 거의 고려 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앙숙인 부족이 한나라에 묶이기도 하고 하나의 부족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나뉘는 등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마사이족의 경우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의 국경선이 부족의 거주지 중심을 가로질러 그어지는 바람에 졸지에 국적이 다른 이산가족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 어렵사리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 국가들은 영토는 얻었으나 국가의 정체성은 빈약했다.

정부 기관을 갖추며 유형의 국가 형태는 만들어졌지만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무형의 국가관이 없었다. 나이지리아 300여 부족, 탄자니아 120여 부족 등 한 나라에 수십 또는 수백의 다양한 집단이 있었다.

각각의 부족들은 고유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었고 각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같은 나라의 국민이라고 하기에는 그들 사이에 문화, 언어, 역사 등 공통분모가 별로 없었다.

도시에서 공부하다가 시골집에 돌아온 아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드디어 케냐가 영국에서 독립하게 되었어요!” “그래, 그거참 잘되었구나. 그런데 케냐가 뭐니?”

독립 당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이 이와 비슷했다.

대다수 주민들은 이제 막 생겨난 국가라는 존재보다 예전부터 자신들이 속해있던 부족 사회에 더 친밀감을 느꼈다.

살갑지도 않은 다른 부족들과 한 울타리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들과 함께 부족보다 더 큰 국가라는 조직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영 어색한 개념이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첫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국가를 다스리는 거물을 뽑는 거라면 당연히 같은 부족 사람이 되는 게 좋은 것 아니겠나.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부족 출신 후보에게 표를 줄 이유가 없었다.

유권자들은 맹목적으로 자신이 속한 부족, 출신에게 표를 던졌고, 정치인들은 이런 성향을 이용하여 선동과 갈등을 조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아프리카 부족 주의 정치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니엘 모이 대통령의 독재정치가 한창이던 1992년부터 케냐는 다당제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정당 설립이 쉬워지면서 케냐의 43개 부족은 각각 자기 부족민을 대표하는 정당을 세웠다.

각 당은 이념이나 특정 계층의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각 부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을 띠었다.

부족 중심의 정당은 한 나라에 여러 부족들이 모여 있는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신의 부족에서 미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공약이 무엇인지보다는 부족에서 지명한 정당 출신인지 아닌지가 표를 주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따라서 케냐에서 선거는 나라를 위해 바르게 일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를 뽑는 제도로써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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