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송효순씨

송효순씨가 장성 기독의원 김승철 원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활짝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주 편일석씨로부터 고마운 마음을 전해 받은 김재중씨가 개인사정으로 인터뷰를 고사해 다른 이로 고사미를 이어갑니다.

서까래가 보이는 높은 천장, 미닫이문을 통해 상추 등을 심어놓은 작은 텃밭과 진돗개가 한눈에 보이는 한옥 집에서 송효순(72)씨를 만났다.

송 씨는 담양에서 태어나 거주하다가 27살에 장성으로 시집을 왔다.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는데 아들들이 모두 서울에 거주 중이다. 송 씨는 장성으로 시집을 온 후 안 해본일이 없었다.

“내가 시멘트 장사부터 비닐하우스, 택시 안 해본 게 없었어.”

송 씨는 시멘트 장사를 하다 하우스재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몇 년이 되도록 끊이지 않은 재해와 가격 폭락으로 더 이상 하우스재배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1,000만원의 빚만 지고 포장회사에 들어갔을 때 나이 38살이었다.

“나는 모르겠고 자식들을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돈을 벌었지.”

송 씨는 포장회사를 다니다 또 다시 직장을 옮겨 동화농공단지에서 55살 정년퇴직까지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둘 수는 없어 일용직으로 발품을 뛰다 재작년에 퇴직했다. 이후 송 씨는 매일 황룡강변길을 걷고 친구를 만나며 어느 때보다 편안한 삶을 즐기고 있다.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송효순씨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사람은 장성 기독의원 원장 김승철씨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김승철 원장님께 감사해요.”

김승철씨는 송 씨의 주치의다. 송 씨가 58살 무렵, 숨이 안쉬어지고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등 몸에 이상을 느꼈다.

심장에 무리가 온 것이다. 이미 송 씨의 마음도 삶에 지쳐 어둠이 파고든 상태였다.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그때 김 씨와의 인연이 맺어졌다.

병원을 찾았을 때 진단받은 병명은 경동맥 협착증이었다.

수술을 위해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거절의 말을 듣고 다시 장성 기독병원으로 오게 됐다. 김 원장은 밝게 맞이하며 처방으로 약 몇 알과 운동을 권했다.

그때부터 약 15년간 송 씨는 병원을 오가며 아침마다 황룡강변길을 매일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걸을 때마다 송 씨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병원에 갈 때마다 얼마나 밝게 맞이해주는지. 정말 감사하지. 원장님을 만나고 운동을 하면서 몸도 좋아졌지만 내 마음도 평안해졌어.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야.”

항상 미소와 함께 맞이해주는 김 씨가 있어 행복하다는 송 씨. 늘 잊지 못할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더 이상의 말을 보탤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함 뿐인 김 원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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