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55. 아보카도 여인과 그의 아들

부룬디에서 무료 교육 수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다. 영어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가난한 미혼모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큰길 옆 가로수 그늘 아래서 아보카도를 팔았다. 저녁이면 우리 교육원의 무료 교실에 와서 영어를 공부했다.

그녀에게는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엄마가 공부하는 동안 칭얼거리지도 않고 조용히 있어주었다. 나는 그런 아이가 너무나 귀여워서 엄마가 수업 시간에 공부할 때면 대신 아이를 안아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 엄마가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1주일, 2주일을 이어서 결석을 했다.

아보카도를 팔던 자리에 가보아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도 행방을 몰랐다. 그리고 몇 주 후 그녀가 돌아왔다.

평소처럼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는 그녀, 그런데 아이가 없었다. 수업을 마친 후 그녀에게 물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런데 귀여운 아들은 어디 갔나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뜸 들이지 않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걔 죽었어요.”

걔 죽었다.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꺼내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이란 단어가 가진 무게에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천천히 깜빡이지도 않았다.

내게 답을 한 후 싱긋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같이 웃어야 하는 걸까.

어항 속 구피가 죽어도 그렇게 쉽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녀가 자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나에게 말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 후로도 나는 어느 집에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여러 차례 들었다.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은 너무 쉽게 목숨을 잃었다.

유니세프 아동 생존 협약에서 2015년 9월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에서 594만 명의 어린이가 5살이 되기 전에 죽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294만 명이 5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5세 전에 죽는 아이들의 숫자가 다른 대륙의 수치를 합한 것과 맞먹는다. 하루에 8,052명, 1시간에 335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숫자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어린이 12명 중 1명이 5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

죽은 아이를 떠나보내는 건 아프리카에서 낯선 경험이 아니다. 사람들은 쉽게 체념하고 인정한다. 심지어 자기 아이들이 죽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넘겨버린다.

이래도 되는 걸까?

정말로 어린이의 죽음을 으레 있을 법한 대수롭지 않는 사고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어느 부모가 자녀의 죽음에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귀여운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죽은 것에 정말로 담담했을까.

어쩌면 아이를 묻기 위해 무덤보다 더 큰 구멍을 가슴속에 파야 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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