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51. 킬리만자로에 흐르는 눈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산 중 하나인 킬리만자로. 사방이 탁 트인 사바나 초원 한가운데 불뚝 솟은 해발 5,895m의 아프리카 최고봉. 정상에는 만년설이 자리 잡고 있다.

장구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눈은 50m가 넘는 거대한 빙벽이 돼 아프리카의 지붕을 장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뜨거운 적도 아래에서 빛나는 하얀 봉우리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이는 아랍과 서양의 옛 기록에 널리 소개되었고, 1402년 조선에서 편찬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도 발견된다. 근래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고 재창조되며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하얀 킬리만자로 정상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이미 거의 그렇게 되고 말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계속되며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해 온난화가 심각해졌고, 지구는 역사상 가장 더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온난화 현상은 양극 지방의 얼음과 세계 여러 고봉의 만년설을 녹이고 있다. 특히 킬리만자로는 적도에 위치해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부통령을 지냈던 앨 고어는 2006년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서 만년설을 잃어버린 킬리만자로의 온난화의 상징으로 소개했다. 사람들은 황량하게 변한 킬리만자로의 모습에 경악했다.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PNAS)에 실린 오하이오주립대의 논문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07년까지 킬리만자로 만년설의 85%가 녹아내렸다고 한다. 남아있는 부분 역시 십수 년 내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2016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접경지 올로이토키톡에서 킬리만자로를 마주한 적 이 있다.

떠오르는 아침 해가 보내는 부드러운 빛이 산 사면의 은회색 화산 토양에 반사됐다. 킬리만자로는 신비한 빛에 휘감겨 거대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본 그 산은 예전의 킬리만자로가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킬리만자로와 만나는 동안 나는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일으킨 재앙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상처 받은 킬리만자로를.

고대부터 아름다움을 칭송받아온 남국의 하얀 산은 우리의 기억과 다른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만년설은 대부분 녹아내렸고 정상 끄트머리에 작은 눈 무더기 일부만 남아있었다. 학자들은 지금 같은 온난화 속도라면 얼마 남지 않은 만년설 역시 모조리 녹아버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눈이 녹은 물은 마치 산이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진다.

지구 온난화에 고통받으며 슬퍼하는 아프리카의 눈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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