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만에 고향 돌아와
먹고 살길 막막한 조윤형씨에
무화과 권유한 양연모씨

“그 형님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늘 마음속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한다는 게 오늘에서야 전하게 되네요.”

함평군 학교면에서 줄곧 무화과 농사를 해오던 조윤형(69)씨는 1991년 전까지 삶의 터전을 떠난 적이 없다. 그동안 학교남초등학교, 학다리중학교, 학다리고등학교를 거쳐 오며 농사만 하며 살아왔다.

1979년 지금의 아내를 만나 백년해로를 약속하며 살아오다 슬하에 평생 보물인 아들과 딸을 얻게 됐다. 일평생 봉급생활 한 번을 안 해봤던 그가 함평을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자녀 교육 때문이었다.

“애들 초등학교 때 인천으로 가게 됐는데, 농사만 짓다가 운송업에 뛰어 들었어요. 있는 돈 가지고 대형차 하나 샀는데 적성에도 안 맞고 힘들게 일했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 사고도 나고, 여러 가지 하다가 잘 안 풀렸어요. 그렇게 10여 년간 떠돌다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죠.”

2004년 다시 돌아온 고향이었지만 당장 먹고 살길에 막막했다. 눈앞이 캄캄해 어렵던 조 씨에게 손을 건네준 것은 다름이 아닌 고향 동무이자 가까운 형인 양연모(72)씨였다.

현재 비닐하우스 4동 전체 1,200평 면적에 무화과를 재배할 수 있기까지에는 양 씨의 도움의 손길 덕분이었다. 꼬마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며 자라온 세월 속에 양 씨는 늘 조윤형 씨의 시간에 함께 있었다.

그만큼 가까웠던 사이였던 만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형님이었다. 조 씨가 표현하는 양 형님은 섬세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다시 돌아왔는데 먹고 살 방법이 없어서 ‘어째야 하나’ 싶어 양연모 형님을 찾아갔어요. ‘형님, 저 좀 도와주쇼. 제가 뭐슬 하면 되겄소’ 물으니 무화과 해보라고 권유 해주셨어요.”

양 씨의 손길은 권유에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 하나 알려주었다. 무화과 식재부터 납품처 연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친환경 무화과 재배에 함께 힘써준 결과 안정적으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지역에서 학교면농업경영인회 회장과 주민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다. 줄곧 해왔던 무화과 농사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조 씨가 현재와 과거를 뒤돌아보면 가장 고마운 사람은 당연 양연모씨이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동기가 양 형님 덕분이에요. 지금도 생각하면 제가 무화과 아니면 무엇을 하며 살아왔을까 싶네요. 형님께 고맙다는 말을 매일 해도 모자라는데 직접 말로 한다는 데 참 쉽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건강하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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