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49. 전쟁터 나가기 앞서 수업 참석

전투가 계속되고, 시장도 문을 닫는 상황에서 무료교실 수업을 계속 진행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개울 건너 옆 마을에서 반군과 정부군이 시가전을 벌이는 판국에 어떤 간 큰 사람이 영어 문장 몇 개 배우러 여기까지 찾아올까?

학생들이 얼마나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안고 수업을 강행하느니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수업을 잠시 멈추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 자신부터 불안하고 걱정스러워서 수업을 접고 쉬고 싶은 바람이 컸다. 나의 의견을 들은 부룬디 현지 자원봉사자들은 일단 그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동정을 살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야간 수업 시작 시간이 가까워 오며 나는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걸 알았다. 그 난리 통에도 학생들은 무료교실에 공부를 하러 왔다.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인 학생들은 전쟁 전과 똑같이 빳빳하게 다린 옷을 입고 손에는 볼펜과 공책을 들고 대체 전쟁과 공부가 무슨 상관이 있냐는 듯 밝은 얼굴로 교육원의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전쟁으로 버스 운행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오토바이나 자전거 택시를 타고 오는 학생들이 평소보다 더 많았다. 택시 운전을 하는 나이 많은 학생은 자신의 차에 인근에 사는 학우들을 잔뜩 태워 수업에 함께 오기도 했다. 전쟁에도 그들이 품고 있는 배움을 향한 열망은 뜨겁기만 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평소의 절반 정도만 교실의 자리를 지켰다. 학생 한명 한명은 위험을 무릎쓰고 총소리와 포성을 가로질러 교실까지 찾아온 간절함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작은 전구가 간신히 어둠을 밝히는 야외교실에 모인 학생들은 교사의 한 마디를 놓칠세라 집중하며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 중간에 포성이 울려 선생님의 말이 잠시 멈추기도 했다. 사람들은 긴장 속에서 포성이 멎길 기다렸다. 배움의 즐거움에 취한 학생들에게 그런 긴장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수업 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진한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있는데 함부로 수업을 멈추니 마니 했던 나의 섣부른 속단이 부끄러웠다.

곧 전장에 나가야 한다는 군인. 어쩌면 생의 마지막 저녁이 될 수도 있는 귀중한 시간을 그는 우리의 무료수업에 할애했다. 그에게 공부란 그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그날 수업에는 유독 군인과 경찰들이 많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하루하루 살기 급급했던 사람들. 평생 펜 한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고 무언가를 배워본 적 없던 이들에게 공부는 목숨이 걸린 위험한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배움을 향한 간절함에 깊은 존경심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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