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바로 올라오셔야겠습니다.”

저녁 늦게 울리는 전화 소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적막한 감정이 베어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묻어있는 그런 목소리다.

길게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서울로 가는 고속 열차는 어느 때보다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서초 경찰서에 있습니다.”

남쪽의 따스함은 몇 시간차로 사라지고 살을 후비는 찬 기운이 속까지 후비며 침범했다.

적막함이 묻어있는 서초 경찰서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을 보이며 새벽을 오가는 사람들을 맞았다.

서울의 밤 기운이 차갑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날씨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새벽에도 드나드는 이가 있는 서초 경찰서처럼 처절하게 목적을 푯대삼아 움직이는 누군가의 호흡들이 모여있는 곳이기에 느껴지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선배는 그렇게 그런 곳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외로웠던 인생이리라. 아니 어쩌면 고독했던 인생이었으리라. 가장으로서 삶보다, 누군가를 모시는 삶에 익숙해진 삶을 살다 피우기도 전에 그렇게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다.

두 딸들은 그렇게 아버지를 보냈다. 아버지와 딸들의 시간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짧은 추억들은 고통에 묻혀지고, 함께 공유했던 그 기쁨들은 눈가로 흐르는 눈물에 씻겨 모두 떠나가 버렸을 것이다.

“00아, 정신차려.”

“니가 정신을 차려야 어머니가 버틸 수 있다.”

할 수 있는 말이 이 말 말고 어떤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어떤 말로 위로 할 수 있을까.

너무 황망한 슬픔이기에 그 슬픔에 빠질까봐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 이 말 뿐이다.

“왜, 모두 나에게 정신을 차리라 그래요….”

눈물이 말라버린 그 눈에, 눈물을 훔치다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면서 하는 말이다.딸이 황망하게 아버지를 잃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단다.

“왜 정신을 차리라고 만 하세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겨우 표현한 말이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마음 속에선 ‘그래 원없이 울어라. 그래 울어야지.’라고 말했다. 큰 소리로 울어서 그 슬픔을, 그 황망함을, 그 분함을 저 멀리 날려 날아가는 먼지만큼이라도 벗어 버릴 수 있다면 울어야지.

선배는 언제나처럼 그 웃음으로 문상객을 바라보았다. 그 웃음에 담겨있는 속삭임을 알 수가 없다.

여러 사람들이 선배를 뵈러 왔다. 평생을 모셨던 그분도 다녀갔다. '동지를 떠나보냈다'는 말이 위로의 표현이었다.

6일 선배는 고향 광주로 내려왔다. 한 달 전 어머니를 보내드렸던 그곳으로 선배는 그렇게 내려왔다.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되어 딸의 품에 안겼다.

서울에 올라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선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왔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많은 사람이 모두 흩어져 자리를 지키는데 왜 이리 가슴은 시리고 아픈가. 삶을 등지는 그 고통의 시간에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슬프고 아쉽다.

무등산 등산길을 처음으로 걸었다.

문빈정사.

선배는 이 한 평의 공간에, 그 짧은 고된 삶을 풀고서 쉬는 자리로 택했다.외로웠던 그 삶을 이제 이곳에서 내려놓고 오가는 그들의 시끌벅적 소리를 들어보리라.

딸들의 엄마는 마지막을 보내는 선배를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선배를 안치하고 나오며 선배를 보러 온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흐르는 눈물이 그분들에게 죄송했을까.

“남편이 너무 불쌍해서요….”

“남편이 너무 불쌍해서요….”

무등산을 올라 본 적이 없다. 봉안당의 문이 열리면 등산객의 발걸음이 들리고, 시끌벅적 소리가 들린다. 무등산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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