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43. 케냐인과 달리기 경주는 금지

칼렌진족의 장거리 주파 능력과 관련된 흥미로운 문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칼렌진족의 소 도둑질 풍습이다. 칼렌진족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소와 염소 등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는 유목민이었다.

평화로운 어느 날, 부락의 젊은 장정들이 모여 은밀하게 이동을 시작한다. 정찰대가 점찍어 놓은 목표로 향하는 그들의 원정은 때로 150km에 이르기도 했다.

며칠에 걸려 목적지에 다다르면 어둠을 틈타 조심스럽게 마을에 있는 소떼를 밖으로 몰아간다. 그리곤 칼렌진족 도둑들은 커다란 뿔을 가진 아프리카 황소떼를 날렵하게 몰아 고향으로 줄행랑을 친다.

방심한 채 잠 속에 있던 마을 주민들은 갑작스런 소들의 질주로 혼비백산하고 전 재산과도 같은 소를 되찾으로 소도둑을 뒤쫓는다. 만약 붙잡히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맞아 죽을 게 뻔하기에 칼렌진족 도둑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달린다.

무사히 마을을 탈출한 도둑들이 소떼를 몰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주민들은 약탈 성공을 축하하는 잔치를 한바탕 벌인다. 황소 도둑들은 영웅이 되고 그들의 모험담은 노래로 만들어진다.

도둑질에 참가해 용맹(?)을 발휘한 대원들에게는 약탈한 소 중 좋은 녀석들을 고를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졌다.

따라서 도둑질 원정에 여러 번 참가해 살아 돌아온 유능한 도둑은 많은 소들을 가질 수 있었고, 아내를 여럿 거느리고 살 수 있었다.

즉, 칼렌진족 문화에서는 먼 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능력을 지닌 사람일수록 더 부유해질 수 있었다.

이처럼 달리기 능력을 최고로 치는 문화 속에서 살아온 칼렌진족에게 마라톤은 형태만 조금 바뀌었을 뿐 이미 친숙한 경기였다.

집단 소 도둑질은 영국의 식민지배 기간 자취를 감췄지만, 오늘날 황소 도둑의 후손들을 세계 마라톤 대회를 석권하며 월계관을 휩쓸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지구인 중에 먼 거리를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사람들이 케냐인이다. 만약 케냐에서 강도를 만나면 행여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말고 가진 것을 순순히 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몹쓸 인간들을 만난 자신의 불운을 탓해야지,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달리기 경주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달리기로 이기기는 어렵다.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