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41. 젊은 무리와 각양각색의 사람들

케냐 생활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됐을 때 종종 급격히 나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과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내가 사는 나이로비가 해발 1,700m의 고지대라는 걸 떠올렸다.

설악산 대청봉쯤 되는 높이이다. 달라진 환경에 몸이 반응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늘어질 수는 없었다. 아무 운동이라도 시작해보기로 했다. 케케묵고 뻔한 작심이었지만 마침 새해도 시작되는 터라 결심을 굳혔다.

그날부터 며칠간 열심히 줄넘기를 했다. 하지만 좀처럼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줄을 팽팽 돌리며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게 너무나 심심하고 지루했다.

그러던 차에 케냐 대형마트에서 거금 500실링(한화 5,500원)을 주고 산 중국산 줄넘기는 길이가 조절되지 않아 짧은 내 다리에 맞지 않았고, 얼마 못가 손잡이마저 고장 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다른 운동이 필요했다.

아직 해가 고개를 들기 전, 어슴푸레한 여명이 가까워 오는 이른 새벽, 새로운 마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섰다.

거리에는 매연 냄새가 듬뿍 섞인 연푸른 안개(어쩌면 밤새 정체된 매연일지도 모른다)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부지런하게 하루를 여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내 시선은 그 중 달리기를 하는 이들에게로 향했다. 운동복 차림의 호리호리한 젊은 무리가 “하나 둘, 하나 둘” 구호를 붙이며 열 맞춰 지나갔고, 그 뒤를 반바지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멘 작은 소년이 좇았다.

말쑥한 정장을 착용한 지긋한 중년 남성도 목을 죄는 넥타이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뿐히 달음질을 했다.

걷는 것마저 쉽지 않아 보이는 퉁퉁한 부인은 급한 일이 있는지 뛰다 걷다하며 행인들을 피해 앞으로 전진했고, 달리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가발과 요란한 장신구로 한껏 멋을 낸 아가씨도 뾰족한 하이힐을 벗어 핸드백에 넣고 뛰기 시작해 금세 저 멀리 사라졌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찍어내는 발자국과 뱉어내는 숨결이 새벽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