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40. 그들의 휴대전화

아프리카인들의 요구를 딱 맞춘 폰이 등장했다. 케냐에서 인기몰이 중인 ‘X-TIGI S80’이라는 중국제 휴대전화는 배터리 용량이 무려 1만 8,000mAh에 달한다.

갤럭시S9 배터리 용량이 3,300mAh인 걸 생각해 보면 웬만한 휴대전화의 대여섯 배나 되는 대용량이다. 이 기종을 사용하는 내 친구 헨리 씨는 한 번 충전으로 2주에서 한 달까지 버틸 수 있다고 내게 자랑했다.

게다가 X-TIGI 배터리에는 USB슬롯이 있어서 이 전화기를 이용해 다른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도 있다. 이정도면 휴대전화에 배터리가 달린 게 아니라 배터리에 휴대전화가 달린 셈이다.

그리고 X-TIGI에는 커다란 전구를 갖춘 밝은 손전등이 달려있다. 전화기의 측면에 부착된 전등 전원 버튼을 밀어 오리면 바로 불이 켜진다.

굳이 복잡하게 휴대전화 메뉴에 들어가서 작동시킬 필요가 없다. 전화기를 꺼놓은 상태라도 전등 전원 버튼만 누르면 바로 손전등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대용량 배터리가 달려 있으니 밤새 켜놓아도 하쿠나 마타타! 아프리카에서는 밝고 오래가는 손전등이 있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멋진 아빠, 따봉 남편이 될 수 있다.

가격은 3,000실링으로 우리 돈 3만 3,0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물론 라디오도 된다. 큰 배터리 용량과 강력한 손전등, 그리고 저렴한 가격.

X-TIGI는 중국에서조차 유명하지 않은 휴대전화 제조업체지만 아프리카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기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힘껏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성장 가능성은 이미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인들은 코미디 영화 속 우스꽝스러운 원시인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 앞에 섰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건 아프리카의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외국인들이 아직도 한국을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파괴돼 고아와 거지가 넘쳐나는 가난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와 마찬가지다.

우리의 시야가 편견과 오류로 범벅된 채 아프리카의 특정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한심할 것인가? 부시맨에서 벗어나 X-TIGI처럼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직시할 때 우리는 그들과 함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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