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39.대용량 배터리라면 단연 최고

아프리카 서민들에게 스마트폰은 부담스러운 물건이다. 저가형 모델이 출시되고 있다고 해도 어지간한 스마트폰 가격은 몇 달지 월급을 훌쩍 뛰어넘기 마련, 게다가 열악한 아프리카 인터넷 환경은 스마트폰이 가진 최대 강점을 살리지 못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젊은이들이나 손을 떨지 않고 단말기를 구입할 능력 있는 부유층이 아니라면 굳이 스마트폰을 구입하려고 욕심 부리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구형 피처폰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구형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구입하지는 않는다. 빈한한 살림에 거액의 지출을 결정하지 전 몇가지 중요한 선정기준에 따라 꼼꼼하게 전화기를 살핀다. 한국에서라면 단말기 성능이나 디자인, 통신사 서비스 등이 우선시될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에게도 나름의 휴대전화 구입기준이 있다. 그들은 먼저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모델인지 확인한다. 예나 지금이나 라디오는 아프리카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라디오는 TV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다. TV는 비싸고, 전기를 많이 먹으며, 시청료도 내야하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단점은 농사일을 하면서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농부들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일한다. 작은 휴대전화로 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벽돌만 한 가정용 라디오를 옥수수 밭까지 옮겨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미한다. 라디오 신호를 잘 잡는지 여부는 휴대전화 선택에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다.

다음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휴대전화에 장착된 손전등의 밝기를 확인한다. 전화기에 달린 전등 불빛으로 얼마나 넓은 방을 밝힐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만약 손전등이 달리지 않는 휴대전화가 있다면 오늘날 아프리카인들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이따위 쓸모없는 물건을 만들다니 신들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

아프리카의 밤은 정전이 잦다. 전기가 끊어지면 휴대폰 전등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한다. 잘 모르겠다면 오늘 밤 불을 끄고 바가지로 샤워를 해보자.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발가락 앞에 놓인 비누 하나 찾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있다. 바로 배터리 용량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 번 충전으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화기를 최고로 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가정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며 비어있는 전기 플러그만 보이면 핸드폰을 충전한다.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갔을 때 전기 플러그를 150개 정도 이어 붙여 충전기를 꽂을 수 있게 해놓고 유료로 충전을 해주는 가게를 본 적이 있다.

한 번 이용에 우리 돈 200원 정도를 받는 그 충전 전문점은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정의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오래가는 배터리는 좋은 핸드폰이 갖춰야할 필수 조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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