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35.이싸카 나 위야씨

1895년 영국은 케냐 지역을 동아프리카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백인 이주민들은 케냐의 가장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원주민들을 부리며 주인 행세를 했다. 케냐 사람들은 침략자들의 채찍과 총에 무릎을 꿇었지만 언젠가 고토를 되찾을 날을 그리며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아프리카도 전쟁에 휩싸였다. 영국령 아프리카에서 105만명, 프랑스령 아프리카에서 19만명 등 135만명에 달하는 아프리카계 군인들이 전쟁에 투입됐다. 영국군에 소속된 케냐 군인들은 주로 버마 정글에 파병돼 일본군의 인도 침략을 저지했다.

케냐인들은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자신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섬기던 백인 주인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비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케냐에서는 신의 대리인처럼 고상하게 굴던 백인들이었지만 전쟁 앞에서는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현재 나이로비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고 있는 앤드류 씨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노역을 했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군인 정신과 복종을 케냐인들에게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전투가 터지자 그들은 뒤에 숨어버렸고 케냐 병사들만 전장에 보내졌다고 한다.

아프리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열강들의 욕망이 충돌한 전쟁에서 목숨을 걸어야했던 앤드류 씨의 할아버지와 전우들. 그들이 느꼈던 굴욕과 부조리가 세대를 넘어 지금도 앤드류 씨와 그의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1945년,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케냐인들은 영국을 위한 자신들의 희생이 적합한 대우를 받기 기대했다. 하지만 한국이나 리비아처럼 전쟁 후 독립을 얻은 패전국의 식민지와는 달리 케냐는 여전히 승전국 영국의 지배하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백인 주인들은 전리품과 명예를 차지했다. 그러나 주인을 위해 피를 흘린 충직한 하인은 여전히 하인일 뿐이었다. 케냐인들은 분노했다.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케냐인들은 백인들이 본래 도둑이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영국인은 이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쫒아내야 할 불청객이었다. 진정한 주인은 자신들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당연한 진실을 마주한 케냐 사람들은 절규하듯 외쳤다.

“이싸카 나 위야씨!(Ithaka na Wiyathi!)” 땅과 자유를 뜻하는 이 키쿠유 방언은 독립을 상징하는 구호가 돼 사람들 사이에 퍼져갔다. 빼앗긴 땅과 자유, 이싸카 나 위야씨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뭉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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