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배를 채워야겠다는 원초적 본능은 비 내리는 밤의 위험도, 이곳이 악명 높은 나이로비라는 사실도 잊게 만들었다.

우리 셋은 배고프다고 노래를 하며 먹을거리를 찾아 어둔 밤길을 돌아다녔고, 결국 늦게까지 문을 연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한 아름 구입하고 나서야 숙소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히히덕거리는 우리의 웃음 뒤로 발소리를 숨긴 그림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한 무리의 젊은 남자들이 뒤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무딜 대로 무뎌진 감각으로는 그들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챌 수 없었다.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 시커먼 손들이 뻗어 나와 나를 휙 잡아챘다. 입을 틀어막고 허리를 후리는 강한 힘에 못 이겨 나는 빗물이 고인 비포장 진흙탕 길 위로 나뒹굴었다.

갑작스런 습격에 놀라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내 짧은 다리는 몇 걸음 제대로 용을 써보지도 못하고 놈들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한 놈이 내가 매고 있던 가방을 붙잡았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생각이 하나 들어왔다.

‘이 가방 빌린 건데!’

그랬다. 난 그날 친구에게 빌린 가방을 매고 나왔던 것이다. 친구의 가방을 뺏기면 안 된다는 멍청한 생각에 홀린 나는 줄다리기 하듯 가방을 잡고 강도와 힘겨루기를 했다.

내가 버티자 강도들은 나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나는 악을 지르며 매달렸고 급기야 강도 하나가 내 목을 졸랐다. 하이에나 같은 강도들은 내 가방, 정확히는 내 친구의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

불과 1,2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다행히 나 외에 다른 2명은 물건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나 1명은 강도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괴로워했다. 온 몸이 흙탕물로 범벅된 우리 셋은 커다란 분노,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에 휩싸였다.

충격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서둘러 사건 현장에서 탈출했다. 술 취한 듯 세상이 핑핑 돌았고, 사물이 2,3개로 분리되어 어지러이 움직였다.

거리의 행인이 우릴 쳐다보기라도 하면 또 다른 강도 패거리인 것 같아 고래고래 악을 질러 쫒아냈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겨우 버스를 잡아타 늦은 시간이 되어야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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