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잊을 수 없는 사람, 부룬디에서 만난 마마 벨로, 그녀는 남편과 10명의 자식들이 있는 대가족의 마나님이다.

부줌부라 시장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마마는 아프리카 미녀의 조건인 퉁퉁한 몸집에 수수한 전통복을 차려 입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마마의 아들딸들은 우리 교육원에 영어를 배우러 오는 똘똘한 꼬맹이들이었다.

가끔씩 내가 가게에 놀러 가면 마마 벨로는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안아주고 볼 뽀뽀를 해주며 기쁘게 반겨주었다. 손님이 뜸할 때 우리는 북적이는 시장통의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대화다. 마마 벨로는 영어를 못하고 부룬디 말만 할 줄 안다. 반대로 나는 부룬디 말을 모르고 영어만 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무지무지 재미있다. 깔깔깔 웃고, 눈이 휘둥그레지게 놀라고, 환호하고 박수치고 껴안으며 손짓 발짓 다 동원해 대화를 한다. 잘 모를 때는 대충 넘어가고, 영어가 안 되면 한국어로 떠들고, 앞뒤를 잘라먹거나 뻥튀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게 무슨 대화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마마 벨로와 나는 진정 신나는 수다를 떨었다. 단어와 문장이 또박또박 전달 돼야만 대화일까? 말 못하는 갓난아이와 엄마도 서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가? 아마 언어가 개발되기 전의 사람들이 이렇게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노랫말을 모르더라도 외국팝송이 전하는 느낌을 이해할 수 있듯이 앞뒤 안 맞는 동문서답이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마마는 조심스레 쌈지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살짝 손을 펴보니 1,000원 남짓한 돈이다. 처음에 나는 그 돈을 받을지 말지 고민했다. 한국에서는 바닐라라떼 한 모금 값도 안 되는 푼돈이지만, 부룬디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받으면 그녀의 집에 바글거리는 10명의 아이들은 그날 저녁 평소보다 음식이 적게 놓인 식탁에 앉게 될 것이다. 아이들을 먹이는 대신 나에게 돈을 쥐어주는 마마 벨로.

그녀의 가정 현편을 알기에 선뜻 받을 수 없었다. 얼른 가져가라는 아주머니의 타박에 못 이겨 결국 구깃거리는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갑작스레 생긴 용돈에 좋아해야할지 부끄러워해야할지 몰랐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보았을 때 나의 고민이 바보 같은 질문임을 알았다. 눈앞의 마마 벨로는 마치 자기가 돈을 받은 것처럼 아름다운 입꼬리를 높이 올려 웃으며 그 넓은 품으로 나를 안아 주었다.

“네가 좋아하는 빵을 오늘은 저쪽 골목에서 팔고 있으니까 꼭 사먹고 가렴.”나를 푸근하게 껴안아 준 아주머니는 막내 아들에게 당부하듯 꼭 빵을 사먹으라며 거듭 강조했다.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