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광 대마면 농민 이석화씨

2020 새해와 함께 농업인들도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더욱 밝은 상황이 오길 소망하고 있다. 지난해는 농산물 가격 폭락, 직불제 개편,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그리고 태풍 피해까지 겹쳐 농업 현실은 그저 암울할 뿐이었다. 본지는 영광군 농민을 만나 지난해 농업 현실을 되짚어보고 농민들이 바라는 2020년도 농업 방향에 대해서 들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연이은 농산물 가격 폭락과공익형 직불제 도입으로논·밭농사 올해도 막막해

지난해 태풍에 농가 피해기후변화로 병해충 우려까지정부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농업인 허탈·배신감 느낄 뿐

농업의 공익적 가치 인정돼영광군도 농민수당 올해 도입“농민과 함께 정책 마련하자”

“올해는 무엇을 심을지 모르겠다.”

영광군 대마면에 거주하는 농민 이석화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밭 6마지기에 뿌릴 퇴비까지 구비했지만 막상 심을 작물을 아직까지도 정하지 못했다.

정부에서 논 타작물 전환 재배 사업을 농민들에게 장려하며 지난해 이것저것 심었지만 무, 배추, 양파, 대파 등 극심하게 변동하는 밭작물 가격으로 결정을 쉬이 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수수 종자 32만원을 주고 밭에 심었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밭에 뿌린 수수 4분의 3을 새가 쪼아 작황도 망쳤거니와 거름, 인건비가 더 나왔다. 수중에 쥐어진 돈은 36만원.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해 쌀농사가 병해충이 많아 농민들 사이에서 흉년이 들것이라는 우려스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기후 변화로 올해 농사도 걱정이다.”

쌀 목표 가격 사라지며 농민 우려 목소리 제기돼

엎친 데 덮친 격 쌀 목표가격도 없어져 논농사를 시작하기도 막막하다. 기존에 쌀 목표가격과 수확기 산기 가격 차액의 85%를 보전해 최소한의 농가소득을 보장하는 변동직불제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이 제도가 사라지고 공익형 직불제가 도입돼 이제 가격이 떨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벌써부터 막막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쌀 직불금 등 6개 직불금을 공익 직불제로 통합한다. 즉, 모든 작물을 대상으로 경작 면적 단위로 일정 금액을 보전해준다.

농업 직불금의 80%가 쌀에 편중된 기존 제도를 개선해 쌀의 과잉 생산과 작물 간 소득 불균형을 막자는 취지로 추진되는 제도이지만 여기저기서 농민들 사이에서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 쌀값이 다시 30년 전 가격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이제 논에다 무얼 심으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난해 쌀값이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태풍피해로 수확량이 떨어져 가격이 현상을 유지한 것뿐이다.”

지난해 연이어 닥친 태풍 링링, 타파 그리고 미탁으로 인해 영광군 관내 총 3535 농가가 2807.7ha 면적에 피해를 입었다. 이중 벼가 2,509ha로 3,141농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는 태풍으로 인해 가격 하락은 피했다는 말들이 웃음만 나올 뿐이다.

농업현실 반영 안 된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배신·허탈감

지난해 농업 현실을 돌아보자니 2019년에 들어설 때부터 농산물 가격 폭락하고 후반기를 접어들면서 변동 직불제 개편에 정부 WTO 개도국 지위 포기까지 농업·농촌 현실이 그저 암울한 시간들이었다.

“WTO 개도국 지위 포기는 국민으로서 비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농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결정이 결코 아니었다.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모든 제도와 결정에는 농민 의견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촛불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농업 현실도 달라지는 게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허탈과 배신감을 느낄 뿐이었다.”

지난해 10월25일 정부가 농업분야에서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이에 영광뿐만 아니라 전국의 농민들과 사회단체가 정부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영광군농민회에서도 지난해 11월11일 집회를 열고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철회를 촉구하며 ‘농업의 현실은 25년 전인 WTO 협정 체결 당시보다 후퇴해가고 있다.

정부가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보장을 위해 쌀값 안정대책과 제도개선이 먼저 시행돼야 한다’며 시위를 펼쳤다.

영광군 올해 농민수당 도입…공공수급제와 법 제정 등 기대해

하지만 지난해 한줄기의 빛과 같은 순간도 있었다. 바로 농민수당 도입이다.

“농민수당은 농민들이 이뤄낸 것이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인정받고 보상받은 것이다. 아직 지급 대상, 금액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농민들이 나서서 하는 것이 옳은 정책이라면 이뤄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농민수당은 영농 규모나 수확량 등에 상관없이 소득보전 개념으로 농가에 일정액을 주는 제도이다.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농민수당’을 지난해 전남도에서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영광군도 올해 농민수당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 씨는 더 나아가 농민수당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떠나 농민수당 법이 제정돼 전국적으로 입법화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땀을 흘려 정당한 가치를 얻는 다면 농업에는 문제가 없다. 지자체에서 농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지원을 하지만 이것은 진단도, 처방도 잘못됐다. 근본적인 가격과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러한 노력들도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석화씨가 2020년 바라는 것은 농민과 함께 정책을 마련하고, 공공수급제 실시와 농민수당 법 제정이다.

“올해부터는 농업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농민의 의견이 반영되고 함께 협의점을 찾아가는, 농업이 밝아지는 해가 되길 바란다.”

WTO개도국 지위 포기에 트랙터 농성을 진행한 농민회
수입쌀 시장격리 관련해 투쟁하는 영광군농민회
태풍 피해로 쓰러진 벼들을 가리키고 있는 영광 농민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