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3. 아프리카와 나(하)

이틀간의 비행을 거쳐 나는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에 도착했다. 조그만 부줌부라 국제공항은 김이 붙은 일본 주먹밥을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었다.

세계 최빈국의 공항답게 외벽은 군데군데 하얀 칠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 있었고, 깨지고 금이 간 유리 지붕으로는 빗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 때 건축가를 흐뭇하게 했을 이 늙은 공항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마지막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노신사처럼 이방에서 온 방문객을 맞이했다.

공항에는 해외봉사 1년 동안 나와 동고동락할 모대곤 부룬디 지부장님이 마중나와 있었다. 함께 교육원으로 이동해 짐을 푼 후 모대곤 지부장님은 몇 가지 업무를 위해 나를 데리고 시내에 함께 나갔다.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20인승 정도 되는 탈탈 거리는 찌그러진 고물 버스가 우리 앞에 멈췄다.

버스에 오르니 까만 얼굴에 수십 개의 눈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주목에 당황스러워진 나는 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수군수군 키득키득. 재미있는 것을 눈앞에 둔 수줍은 장난꾸러기들이 곧잘 내는 소리가 버스 안에 가득 찼다.

몇몇 한량들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으흥?”하고 모르겠다는 몸짓을 한 번 했는데….

그 순간, 버스 안의 사람들은 그동안 참아오던 웃음을 한 번에 터트리듯 일제히 깔깔깔깔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퉁퉁한 아줌마, 코 찔찔이 어린이, 앞니가 다 빠진 할아버지, 선글라스 낀 멋쟁이 청년, 앞좌석의 버스 운전사와 안내양까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박수를 치고 침 튀겨 가며 목젖이 다 보이게 웃었다.

웃음으로 가득 찬 맑은 호수에 풍덩 던져진 듯 사방에서 밀려오는 박장대소에 온몸이 감겼다.

격식, 체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감정을 따라 마음껏 뿜어내는 밝은 웃음소리, 한국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소리였다.

나도 덩달아 그들과 함께 웃어보았다. 굳이 상황을 따져보면 그다지 웃을 일도 아니었지만 그들이 웃기에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우하하하하~”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들떠서 웃는 게 바보 같기도 했지만 마음이 한결 개운해지는 걸 느꼈다.

여기는 아무데서나 누구하고나 눈만 마주치면 신나게 웃을 수 있는 나라구나. 비로소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것이 와 닿았다. 웃음주머니가 터진 우리의 고물 버스는 한동안 깔깔거리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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