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대동면 운교리
운림도사가 지켜낸 마을부터 사연 깃든 돌까지 이야기 多
12가구 18명 거주해…명절 시 음식장만해 함께 시간 보내
마을 길 따라 걸으며 이야기 흔적 찾는 재미 ‘쏠쏠’

▲운림촌 마을 주민들이 하트손 모양을 하며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정희, 장정순, 문윤식 마을촌장, 김덕식 마을 반장 순이다.

선선한 날씨 사이로 다가오는 무더위를 맞을 준비하는 5월.바쁜 일상 속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골 마을에 들러 쉬어 가보자.본지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여있는 마을에 찾아가마을 사람들이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지면에 담아본다.

여우비가 내리는 지난 18일 함평군 대동면 운교리에 위치한 운림촌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가덕마을로 향하는 길로 접어 들다보면 대동면 판교마을을 지나 얼마 못가 운림촌이 나타났다.

숲 방향으로 이어진 길 하나를 두고 양 옆에는 집들이 위치해 있었다. 새로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니 ‘운림정’이라 불리는 마을 시정에 마을 주민들이 앉아 있었다.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웃으며 기자를 반겨준 마을 반장인 김덕식(72)씨.

마을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리자 김씨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운림도사가 도술 부려 지켜낸 마을]

▲마을 시정인 '운림정’

“옛날에 우리 마을에 운림도사가 살았는디, 왜병 날 때 도술을 부려서 마을을 지켜줬었제”

이야기인 즉, 운림촌에는 도술을 부리는 운림처사라는 사람이 살아있었다. 운림처사는 9척 장신에 풍채가 우람했다. 임란을 겪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병들이 함평에도 쳐들어 왔었는데 운림처사가 마을까지 들이닥친 왜병들의 질주를 막기 위해 마을 앞을 바다로 만들어 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운림처사가 마을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왜병들은 막무가내로 바다를 지났다. 하지만 먼지만 일고 무사히 건너게 돼 이것이 도술이라는 것을 깨달아 왜병들은 할 수 없이 영광으로 넘어갔다는 설이다. 그 이후로 마을이 ‘운림’이라 불리게 되고 운림마을 앞 들판이 보름 동안 바다가 됐다해 ‘보름 바댓들’이라 불리기도 했다.

김덕식씨는 “사실 여그 앞에 있는 판교마을보다 우리 마을이 제일 먼저 생겨났고, 지리학자들이 풍수지리적으로 우리 마을 위치가 너무 좋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구름운(雲) 수풀림(林)자를 써서 ‘운림’인 이 마을은 실제로 마을 위쪽에 숲이 우거져 있으며, 비가 오는 날씨 때문인지 구름이 숲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른들이 돌에 손도 못 대게 했제”]

▲마을 길가에 위치한 사연있는 돌
마을 시정 맞은편에는 표면이 우둘투둘한 오래된 돌이 우뚝 서있다. 새로 포장된 도로 가에 홀로 위치한 돌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특별한 명칭 없이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돌’이라 불리는 이 돌은 40년 전만해도 당산제와 달리 정월대보름 때 마을 사람들이 돌에 새끼줄을 틀어 감았다.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존재한 돌의 사연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이 돌이 기이한 돌이라며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 어른들이 절대 저 돌을 건들지 말라고 했었어. 손도 못 대게 했제”라고 문윤식 마을촌장이 말했다.

옆에서 듣던 김덕식씨도 “돌 옆에 있는 저 집에 10여년 전에 살던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할머니가 집을 지으면서 저 돌을 건들었던 모양이야. 근디 그 할머니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왜 내 돌을 만졌느냐고 성을 내니까 할머니까 깜짝 놀래 깼다고 하더라고. 할머니가 죽는 줄 알고 돌앞에 막걸리 한잔 두고 인사를 드렸는데 그 뒤로 꿈에 안나타났다고 해”라고 말했다.

이전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돌을 만지면 ‘재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오던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서도 돌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마을에 사람이 많아졌음 좋겠어”]

과거 15호까지 살던 이곳 마을을 시간이 흘러 현재 12가구 18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귀농한 2가정 외에는 고령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동네는 인심이 좋고, 물도 좋고, 사람들이 온순해서 너무 좋고 몇 안되지만 조용하고 소박하게 잘 살고 있어” 문윤식(79) 마을 촌장이 말했다. 김덕식 씨가 북적북적하던 옛 마을을 회상하며 “예전에는 오락도 좋아하고 농담도 좋아하는 분이 계셔가지고 말 한마디만 해도 재밌었던 분이 있었지. 또 여자 한 분이 있었는데 장구를 그래 잘쳤어. 명절 때는 쑥떡 쩌 먹으면 막걸리 한 잔씩 마시고, 하루 종일 장구 두들기고 놀았제”라고 말했다. 이어 “요새는 사람도 많이 없어지고, 젊은 세대들이 쉽게 어울리지를 않으니 예전처럼 이런 문화는 없어졌제. 자꾸 사람 수가 줄어드니 사람이 많아졌음 좋겠어”라고 아쉬워했다.

지금은 없어진 문화지만 사람이 많았던 2~30년 전만 해도 이곳 마을 사람들은 명절마다 집집마다 음식을 장만해 이웃집마다 들러 하루 종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비록 사람수는 줄어들었지만, 적은 수만큼 오순도순 서로를 챙기며 살아가는 운림촌 사람들. 과거를 회상하느라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가도록 한참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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