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영광 홍농읍 진정리

무더운 햇빛이 내리쬐는 지난 22일.

창문을 살짝 연 채로 군서면에서 22번 국도를 타고 홍농읍 진정마을으로 달린다.

양 옆으로 펼쳐지는 밭마다 호스에서 가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진정마을 회관앞으로 다와가니 회관 맞은 편 가정집 담에 빛 바랜 벽화가 그려져있다.

부분마다 움푹 패인 페인트는 벽화의 오랜 세월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을 당산 할아버지, 할머니 입석.
■ 마을 당산 할아버지, 할머니

마을 회관 바로 앞 나무 두 그루 사이로 천이 둘러진 돌 비석이 2개 나란히 위치해 있다.

회관 옆 정자에서 쉬고 있던 마을 주민 문원준(74)씨는 필자에게 돌 비석에 대해 설명해준다.

문 씨는 “저게 우리마을 당산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제. 예전만 해도 마을에 당산제를 지냈제. 우리마을 당산제가 400년쯤 될까.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끼리 당산 할아버지 할머니께 줄도 감아드리고 하다가 사람들이 돈 벌로 가면서 줄어드니께 유지하는 부분에 어려워 졌제. 그래서 기록으로만 보존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당산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로 모시게 됐어”라고 말했다. 작은 돌 비석에 흰 천이 둘러진 돌 비석은 마을의 터줏대감처럼 그 자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듯 하다. 현재 마을에선 당산제를 지내고 있지 않지만 문원준씨는 꾸준히 과일과 막걸리를 사서 당산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린다. 문 씨는 “마을에서 어디 놀러가고 하면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 드리려고 물 떠놓고 찾아간당께”라고 말했다.

■ 석간수…서출동하수

이야기 도중 나타난 엄근석 (77) 마을 노인회장이 마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 마을이 옛날에 처음 터를 잡을 때 물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샘물을 여기저기 다 파봐도 물이 마땅한 곳을 찾고 있었어. 저기 저 샘물이 예전에 덮개가 없었는데 샘물을 보존한다고 덮개를 씌웠어. 그 샘물이 원래 돌로 쌓여져 ‘석간수’라고 돌 사이에서 나오는 물이제”라고 말했다.

진정마을은 익성군(益城君) 후손의 4대손 세복(世福)이 입촌해, 마을 형태가 귀형상으로 망르 가운데 우물을 파면 재앙이 있다해 서출동하수(西出東下水) 자리를 찾아 우물을 파니 재앙이 없고 온 동네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우물이 되어 ‘참샘골’이라 부르다 참 진, 샘정 자를 써 ‘진정’이라 불렸다.

마을 게이트볼장 옆 바로 보이는 샘물은 마치 작은 하천 통로 처럼 위치해있다.

과거 참샘골이라 불리던 마을 샘물.
■ 백종날…훈훈한 인심 속 점심 한 끼

이어 대화에 참여한 김종관(76)씨는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그렇지만 옛날에는 백종날을 많이 챙겼지. 음력 칠월 보름에 사람들이 모 심고 할 일을 다 끝내고 발을 씼었다고 해서 백종이라고 불렀는디 우리 홍농지역의 큰 명절과 같은 축제였어”라고 말했다.

과거 마을 사람들은 한해 농사의 수고를 위로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윷놀이 등 서로 술 한잔씩 기울이며 마을 자체의 명절인 백종날을 지냈다.

현재 마을 아래 작은 마을 ‘안마실’과 함께 큰 마을을 이뤘던 진정마을은 과거 125가구 400여명이 지낼 만큼 큰 마을이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타지로 옮겨가면서 현재 진정 마을에 50가구 60여명이 살고 있다.

점심시간이 다 되자 마을 분들은 식사하고 가라며 회관으로 들어간다. 마을 회관으로 들어가니 마을 어르신들은 얼른 앉으라며 고봉밥을 내민다. 상 앞에 자리하니 상 위에 쌀밥, 나물 반찬, 콩나물 국이 올려져 있다.

쌀 밥 한 숟가락 먹던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이 이렇게 인심이 좋아. 새로운 사람들 와도 텃세 부리는 것이 없어. 옛날부터 주변 마을에서 우리 마을 칭찬 많이 했제. 이거 하나는 내가 자부하제”라고 말했다.

이어 김복순(84)씨는 “시골이 살면 이런게 좋제. 같이 밥도 먹고. 여기는 문 열어 놓고 살아도 문제 없어. 도시는 이웃 얼굴도 모른다더만. 답답해서 살겠는가”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맞다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필자에게 밥이 부실해서 어쩌냐며 미안해 하는 마을 분께 맛있다고 손사래 쳤지만 마을 분들 의 말 속에서 진한 정과 인심이 느껴진다. 마지막 한 숟가락에도 느껴지는 따뜻한 온도에 배는 물론 마음까지도 절로 배부르게 만든다.

수북히 쌓인 흰 쌀밥을 다 비운 뒤 마을 사람들의 대화는 웃음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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