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마을 주민들. 지난 24일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주민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마르지 않는 구봉산 샘물23번 국도를 따라 불갑면 경계선을 지나 함평 신광면으로 들어서면 구봉마을 비석이 갈색 표지판 옆에 눈에 띈다.

상해임시정부청사 일강 김철선생 독립기념관이라 쓰인 표지판방향을 따라 눈을 돌리면 빨간색, 흰색, 노란색의 꽃이 무성한 꽃길이 펼쳐진다.

입구 근처 위치한 교회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독립기념관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상해임시정부청사 서양식 건물이 보인다. 고개를 더 높이 들면 9개의 봉우리가 펼쳐진 구봉산이 보인다.

뒷산이 아홉 봉우리여서 구봉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흥성 장씨가 들어와 터를 닦은 후 최씨, 강씨가 들어와 살았다. 그 후 영산 김씨 김 황이 들어와 살았으며 1914년 행정 개편 때 영광군 불갑면에서 함평군 신광면으로 편입됐다.

구봉교회 골목길 사이로 지나쳐 도착한 마을회관. 가장 먼저 회관에 도착한 김만선(67) 마을이장이 마을에 대해 소개한다. “여그 구봉산이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명산이에요. 금강송이 이렇게 빽빽히 찬 산이 없어요. 공기가 너무 좋아. 우리 마을위원장님이 구봉산 정자에 시를 지어서 붙여놨어요”라고 말했다.

.일강 김철선생 기념관. 함평군은 2003년 6월, 김철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출생지인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 산자락 넓은 부지에 김철 선생의 사당, 동상, 기념관, 수양관 등을 건립했다.기념관에는 선생의 생전사진, 유물 등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의 각종 자료가 전시되고 임시정부 회의장면 등이 재현돼 있다.
이어 들어온 강재원(78)마을위원장은 “여기 구봉산이 시원지에요. 구봉산에서 나오는 물은 마르지가 않아요. 그 물이 대동댐에 모여 함평 평야가 농사를 짓게끔 끊이없이 나옵니다” 농번기철이라 바쁜 주민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나 둘씩 회관으로 들어온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양란(60)씨는 “구봉산이 등산코스로 딱이여. 아홉봉오리 도는데 딱 1시간이여”라고 말했다.

“산에 샘물이 있는데 샘물에 가보면 주위가 다 암반이러 파지도 못해. 또 물이 계속 흘러서 깨끗하고 물 맛도 좋아요”라고 이경범(64)씨가 말했다.2015년 11월에 구봉산 정상 전망대가 만들어져 일강 김철선생 독립기념관과 구봉산을 찾는 관광객이 1년에 9000여명이 된다.

“마을에 손님은 많이 오는 데 부족한 게 많죠. 관광객들이 더 편히 쉬워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라고 마을 위원장이 말했다. “여기 학생들이 많이 와요, 어제랑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학생들이 오기로 했어요”라고 이경범씨가 말헀다.

구봉마을은 마을 주민이 모두 합심해 준비한 결과 함평군이 주관한 2016행복함평 마을만들기 마을발전계획 발표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여기가 잘 돼는 마을이에요”“우리 마을에는 귀인들이 참 많아요. 애국지사 김철 독립운동가도 계셨고, 옛날부터 마을에 공직자들도 많이 있었어요. 공직자들이 떨어진 적이”라고 김만선 마을이장이 말했다.

이어 “여기가 잘 돼는 마을이에요. 우리마을은 함평군에서도 큰 재벌가도 많이 나왔제. 여기 마을 분 자식 중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다니는 사람도 있제”라고 양영자(77)씨가 말했다.

김만선 구봉마을 이장. 일강 김철 선생의 후손으로 현재 김철 선생 기념관과 임시정부청사를 관리하고 있다.
“우리 이장님도 김철 선생님 후손이에요”라고 강재원 위원장이 말했다. “아이고..김철 할아버지꼐서 독립 운동 참여하시느라고 후손이 없어. 문중에서 우리 부친을 김청 선생님의 양자로 들였어요. 오늘날까지 함평군청에서 제가 후손이니께 김철 선생 기념관과 임시정부청사를 관리하라고 소중하고 막대한 일을 맡겼어요”라고 말했다.
상해임시정부청사. 기념관 옆 선생이 김구 선생 등과 함께 활동했던 상해임시정부청사는 중국 현지 건물과 똑같이 재현됐다. 모든 소품은 중국 현지에서 직접 제작됐다. 내부에는 과거 상해 임시정부의 집무실, 회의실, 화장실 등이 그대로 재현돼 있으며, 각종 독립운동가 사료 등 많은 자료가 전시 돼있으며 과거 일제가 저질렀던 만행과 고문, 범죄 행위들도 전시돼 있다.
마을 이장은 건물을 관리하면서 손님 안내, 홍도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여기 권사님이 요리를 진짜 잘하제. 신광면에서도 알아줘”라고 강주원(75)씨가 말했다.

“추어탕 전문이. 근데 모든 음식을 잘해. 근디 이 농촌 마을에 사는 게 아까워”라고 마을이장이 말했다.

화제의 주인공인 김효순(75)씨는 손사레를 쳤다. “아니 진짜. 신광면사람들이 행사때마다 권사님 음식 맛보는데 다 맛있다고 그래요”라고 김양란씨가 말했다.

“여기 함정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해. 여기 오면 푹 빠져부러. 우리도 3년전에 여기 빠져가지고 못 나가고 있어”라고 김양란씨가 말했다. “장화신고 오면 안 빠져부러” 강재원 위원장의 말에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현재 함정 1리 구봉마을에는 20호 30여명이 살고 있는데 최근 2가정이 귀촌했다. 3년전 서울에서 내려온 이경범,김양란씨 부부는 농사일을 하며 지낸다.

“여기 사람들 보니까 다 밝지라?”마을에 구봉교회가 있어 마을 주민99%가 기독교를 믿는다. 마을이장은 “우리 마을이 순정한 마을이여. 마음씨들이 다 순하고 인심이 좋제. 다들 신앙생활을 하니께 깨끗하제”라며 “여기 사람들 보니까 다 밝지라?”라며 기자에게 묻는다.

‘그렇다’하니 모두 웃음을 터트린다.

단심송. 임시정부 청사 뒤편에는 김철 선생 부인 김씨가 "부군이신 선생께서 가족 걱정 없이 오로지 독립운동에 전념토록 하기 위해서는 죽는 길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목을 매 자결한 단심송(또는 순절소나무)가 서 있다.
마을 행사때는 당산제가 아닌 정월대보름 저녁에 마을 사람들끼리 윷놀이, 선물 주고 받기, 다 같이 식사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우리마을 출신 자녀들이나 사람들이 대소사가 있을때 기부금을 내요. 그걸 모아서 명절 때 가정마다 선물을 나누는 행사도 해요”라고 양영자씨가 말했다.

“지난 주에 마을분들 모두 무시고 가서 삼겹살도 아닌 소고기를 사드렸어요. 돈 100만원 들었다니까요”라고 강주원씨가 말했다. 일 년에 2~3차례 마을 주민 다 모시고 식당에가서 맛있는 식사를 한다는 구봉마을 주민들. “우리 마을이 화합하는 의미로 그렇게 식사해. 마을에서 그렇게 하는 곳 별로 없을 거에요. 시골에서는 큰 돈 들여서 하는거죠”라고 마을이장이 말했다.

이야기가 끝이 날 무렵 마을사람들은 잠시 멈추고 온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 일하러 나간다.

민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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