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가덕동백마을 사람들이 마을 에덴동산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하얀 콘크리트 길을 달려 도착한 가덕동백마을. 마을 입구에 위치한 가리역터라고 적힌 표지판과 가덕마을 비석 옆으로 말 모형 2개가 한 눈에 들어온다.

▲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가리역터
함평군 신광면 가덕리에 위치한 가덕동백마을은 고려 때부터 조선조까지 역참제에 의한 역이었다가 조선조에 가리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양남진 가덕동백마을 이장
“조선시대에 교통통신이 발달되지 않아서 원님들이 말을 타고 서신을 전달했제. 고창에서 와서 여기 하루 자고, 그 담에 나주쪽으로. 이렇게 통신사업을 했다고 해”라고 양남진(76) 마을 이장이 말했다.

공무를 띠고 여행하는 관리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고, 진상물, 관물 등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가리역. 과거의 역할 못지 않게 최근까지도 이 마을은 객지에서 놀러온 여행객들에게 쉬어가는 곳이 돼 준다고.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니 마을 어르신들이 동백씨앗을 가지고 화투를 치고 있다. 한참 게임을 하던 어르신들은 기자가 마을에 대해 물으니 잠시 게임을 멈췄다.

“난공원 생기고 나서 사람들이 억수로 와불제. 지금도 사람들이 생태공원 때문에 많이 쉬고 가제. 객지 사람들이 이 마을 참 좋다고 하제” 서금순(79)씨가 말했다. 과거 생태공원이 신축됐을 적 국화축제도 함께 열려 마을에서 식용 국화를 재배했다.

“국화축제가 엑스포공원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외국사람들도 놀러오고 그랬제. 지금은 옮겨가는 바람에 마을에 있는 국화도 죽어버렀제”라고 이만심(72)씨가 말했다.

이어 서덕례(77)씨는 “그땐 사람도 겁나게 와불제. 계속 국화축제 했으면 마을도 더 커졌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마을 회관 앞 돌담이 가지런히 쌓여진 당산나무가 보인다. 당산제에 대해 물으니 “우리는 당산제 안하제. 우리 마을사람 거의가 저그 가덕교회 다니제”라고 김양금(84)씨가 말했다.

2019년이면 100주년이 된다는 가덕교회는 마을의 사람들과 오랜세월 함께 해왔다.

▲가덕 교회 앞 에덴동산의 아담 이브 동상
“글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술도 입에 안대. 저그 동상 봤소. 저기 동산도 예뻐불제”라고 김양금씨(84)가 말했다. 당산나무 뒤로 에덴동산이 있다. 갈색나무로 만들어진 다리와 다리주변으로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억새와 연방죽이 무수하다. 갈색다리 너머러 아담과 이브 동상이 한 눈에 보인다.

에덴동산 주위로는 어르신들이 운동할 수 있는 기구들도 즐비해 있다. “이석현 전 함평군수님이 가덕 교회 신축될 때 와서 보시더니 농촌교회가 상당히 발전한 교회구나 싶어서 선물로 저거를 해줬자네. 딴 데서는 저런 거 못보제”라고 마을이장이 말했다.

“맞어. 우리 마을에 샘도 있제. 옛날에는 아픈데 있음 그 물로 살살 바르면 낫는다고 그랬어”라고 한복자(78)씨가 말했다. 이어 이만심씨는 “근디 그 물기운이 너무 좋응께 이 동네에 큰 사람이 안 태어난다고 어른들이 그랬제”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마을에 12샘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물이 더 좋아지라고 굿도 지냈다. 현재 2개의 샘이 사라지고 관리가 잘 안돼 샘물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마을회관 안 포스터에 요가, 노래 등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포스터에 대해 물으니 “우리 노래도 배우제. 저그 대동마을 사모님이 오셔서 노래 갈쳐주제. 우리 요새 이런거 배우제.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김양금씨가 노래를 흥얼거린다.

“옛날에 한문 갈쳐주는 선생님 있었제. 마을사람들 다 그집가서 한문 배우러 갔었제”라고 서금순씨가 말했다.70~80년 전 마을 사람들은 마을 구석에 위치한 마을 훈장님 집 마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훈장님 성질 고약했제. 그때는 잘 못 외우면 혼나면서 배웠제. 그때는 맞으면서 컸응께”라고 마을이장이 말했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김양금씨는 옛 기억을 회상하면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른 데서 온 사람 하나도 없어. 다 여기마을 출신이제”라며 “그 때는 연애결혼도 없거 겁나 한 동네에서 중매결혼 해서 만났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떄는 한동네 살아도 남자들이랑말도 안 섞고 살았제. 근데 한 동네에서 만나도 더 부끄럽더만 으허허허허”라고 서덕례씨가 말했다.

“그때는 머시마들이랑 놀며는 어른들이 저 가스나 배렸다고 그랬제. 그래서 말도 서로 못했제. 또 그떄는 머리 가르마 쪼깨마 삐뚤게 타도 ‘저 가스네 배려불제’ 이랬당께”라고 서금순씨가 말했다. 이에 마을 어르신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우리 클떄는 참 재밌게 컸어잉?”라고 서금순씨가 말했다. 어르신들은 웃으시며 마저 하던 게임을 시작했다. 마을회관에서 나온 기자는 맞은편 정자에 앉아 마을 전경을 둘러본 후 탐방을 마친다.

민송이 기자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