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나와라 뚝딱!”하면 단번에 떠올리는 도깨비. 삼국유사 등 여러 문헌에서 기록돼 삼국시대부터 민간신앙에서 믿어지고 있는 도깨비는 항상 도깨비가 실존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알려준다. 이런 도깨비의 존재는 실제 영광읍 우평리에 위치한 우평마을에서 마을의 전통을 유지하게 한 장본인이 됐다. 시원한 바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른 더위가 극성인 지난 3일 마을을 찾아가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도깨비와의 협상, 당산제소가 누워 있는 ‘와우(臥牛)’ 모양을 닮았다 해 우평(牛坪)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387여년 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우평마을에 정 4품 문신 오명열이 처음 마을에 정착하면서 생겨났다.

▲ 창주 오선경, 용강 오보, 귀천 오숙, 임계 오명열 등을 추모해 지은 우산사
현재 70세대 25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우평리는 1,2,3리로 나뉘는데 우평 1리가 본 마을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에 살고 있던 도깨비들이 허락 없이 들어온 마을 사람들이 괘씸해 마을 사람들을 자꾸 괴롭혀 결국 협상을 하게 됐다. “하도 괴롭혀서 ‘뭘 어떻게 해주면 되겠느냐’ 물으니까 자기들 위해서 제를 지내달라는 거 아니여”라고 오규석(77) 노인회장이 말했다.

도깨비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 동서남북 사방에 다섯 그루의 당산나무(오당산)를 심고, 음력 10월 14일 저녁 당산나무 밑에서 당산제를 지내라고 요구했다. 이어 오규석씨는 “당산제 지낼 때 또 제물을 요구하는 거 아니여. 그래서 도깨비들이 좋아하는 메밀묵, 소다리 삶은 거(우족)를 꼭 바쳐야 했어”라고 설명했다.

“우리 마을 당산제가 다른 마을보다 엄격하제. 워낙 특이하당께. 하주(제사 책임자)를 매년 뽑는데 그것도 음양오행, 생지복덕, 길흉 이런 거 다 가려서 정했제. 아무나 못하제. 1주일 전부터 을매나 쓰이는지 몰라”라고 한금순(81)씨가 말했다.

하주로 선정되면 당산제를 지내기 전까지 부정한 일, 부정한 것도 보면 안된다. 예로 들어 대소변을 보는 일, 상갓집 출입, 궂은 음식 먹는 행위, 부부동침 등을 하면 안 된다. 만약 하주가 부정을 타게 되면 도깨비가 화를 내 마을에 해코지를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하주가 제대로 못 지켰는지 그 때 마을 주변에 사고가 자주 났어"라고 임금순(80)씨가 이어 말했다.

하주 선정뿐만 아니라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기와 음식에도 정성을 들인다.

▲ 마을 오당산 중 하나인 당산나무
“매년마다 우리가 제사용 제기도 새로 구비한당께. 한 번 쓴 것은 부정 탔다고 바로 버리제”라고 박순덕(82)씨가 말했다. “또 당제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떡을 했는제 자기 집, 창고, 정미소, 부속건등 암데나 다 떡을 뒀어. 딴 사람들이 우리 집 떡을 가져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 그게 풍습이었지. 근데 지금은 이제 그런 거 안 하제”라고 김소례(83)씨가 말했다.

실제 도깨비가 마을에 존재하는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전에 어떤 사람을 술 취해서 집에 돌아가는디, 도깨비가 그 양반을 입성리까지 끌고 갔다는 말도 있어”라고 박윤임(84)씨가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주민들은 실제 도깨비를 목격한 사람들의 사례를 너도나도 꺼냈다.

한편 우평마을은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생활문화공동체 시범 사업’으로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으며 당산제 굿 축전을 이어왔었다. 하지만 지난해 2016년부터 마을 주민 자체적으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도깨비가 마을을 지켜준거지”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당산제를 지내왔냐는 질문에 “한 번도 쉬지 않았제. 6.25 사변 터져도 우린 계속 지냈어. 우리 마을이 신기하게도 그 시절 영관군에서는 제일 피해 안 본 마을이었제”라고 오규석씨가 말했다.

“그때 영광 내에 하루에 48명씩 죽었어. 근데 우리마을에 피해가 없었는 게 다행이지만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제”라고 오규석씨는 이어 말했다.

“어떻게 보면 도깨비가 마을을 지켜준거지”라고 박순덕씨가 말했다.

마을을 지켜주는 도깨비의 존재는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내는 부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현재 고령화가 심각해져가고 있는 우평마을에서 예부터 부락 주민이 화합하는 과정에 하나의 핵심이 됐던 것은 당산제였다.

당산제 전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전승하고 지켜나갈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 마을 회관 앞에 바로 보이는 거대한 당산 나무의 자태는 도깨비와의 400여년의 약속을 버젓이 보여준다.

민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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