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산면 송암리 입동마을

염전이 주를 이루는 입동마을 전경
마을 이장 이현재(63)씨

입동 마을 가는 길햇볕이 내리 쬐는 지난 22일. 군서농공단지에서 출발해 염산면에 소재하는 송암리 입동마을으로 향한다. 소요시간을 대략 잡아 30~40분 정도 되는 거리다. 차창너머로 보이는 넓게 펼쳐진 밭에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듯 경운기가 덜덜거리며 밭을 간다. 한참을 달리다 염산면으로 들어가는 차들을 반기는 듯 도로 양 쪽에 나란히 배치된 사자 비석들이 보인다. 염산초등학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니 산을 따라 올라가는 도로가 나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겨우 지나 나타난 평탄한 도로 너머로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고 있다.. 듬성듬성 위치한 집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광활한 염전이 나타난다. 하늘의 구름이 반사되는 듯한 깨끗한 염전에 한 염부가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간다. 염전을 지나쳐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입동마을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입동 마을 사람들마을 회관으로 들어가니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모여 계셨다. 삼삼오오 모여 놀이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야기를 나누시는 분들도 계셨다. 정신없는 분위기를 뚫고 기자는 마을 분들께 인사드린다. 마을 소개를 부탁드리자 “마을 청년들이 축구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제. 저기 트로피도 다 청년들이 대회 나가서 탄거여. 마을 청년들이 어른들한데 얼마나 잘 하는 지 몰라”라며 조일순(80)어르신께서 칭찬하셨다.

지금은 직장 생활로 인해 모두 서울로 떠난 청년들을 이야기 하시면서 과거 마을에 청년들이 바글바글 했다고 한다. 어버이날에는 마을 자체에서 구성한 향우회 청년들이 어버이날 잔치를 열어주기도 한다. 어버이날은 마을 자체로 특별한 날로 정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행사를 진행한지도 7~8년 밖에 안 됐다고. 청년들은 각자 타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마을을 위하는 마음 때문에 뒤에서 묵묵히 도와준다.

“정월대보름 때엔 당산제도 지냈제. 그때는 사람이 많으니께 굿도 지내고 맛있는 것도 해먹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같이 놀았제. 지금은 청년들도 없응께 당산제도 이제 못하제. 없어진지 꽤 됐어” 라며 이정숙(81)어르신께서 말하셨다. 과거 마을에 사람이 많았을 적엔 당산제 규모도 크고 마을 사람들끼리 다 같이 마음을 모아 재밌는 것도 많이 했다고 한다. 마을에 대해 아쉬움이 없냐는 질문에 박준환(85)어르신은 “마을 회관이 참 좋은데 좀 좁아. 여기 사람도 많은데 커졌음 쓰겄어. 화장실도 1개 밖에 없어서 하나 더 생겼음 쓰겄어”라며 좁은 공간과 화장실만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으셨다.

“여기 운동선상들도 와서 우리 요가도 가르치제”라며 이재순(78)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다. 복지관에서 강사가 와서 주 1회 마을회관을 찾아 요가 강습을 한다고 한다. 나날이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들은 요가에 재미를 붙이셨다고 . 과거 몸이 건장하셨을 적 마을 주민들은 주로 어업, 염전, 농업에 종사하셨다. 거의 염전 일을 하시면서 생활을 이어가셨다고 한다. 염전 업을 주로 하신만큼 소금에 대한 자부심도 크셨다. 염전에서 난 소금으로 김치를 담그면 김치 숙성뿐만 아니라 간이 잘 돼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여기 군염전에 염전 볼라고 학생들이 여기 많이 오제. 쩌그 갯벌 때문에 여기 소금이 젤 좋아” 라며 이정숙 어르신이 말을 이으셨다. 염전에 대해서는 마을 이장님께서 자세히 아신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 회관을 나와 이장님이 계시는 염전으로 향했다.

마을 염전 군에서 관리하는 군염전에서 일하고 계시는 이장님을 찾았다. 이곳 염전은 면적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다. 작업장으로 향하는 길에 무심결 맡은 공기도 짜게 느껴진다. 저 멀리서 포장 작업 중이시던 입동 마을 이장 이현재(63)씨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모자를 쓰고 계셨지만 매일 햇빛 아래 힘겹게 일하신 흔적을 붉게 그을린 얼굴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빨갛게 충혈 된 눈도 소금 작업 때문이라고. 현재 염전 일을 하신지 17년이 되셨다고 한다.

과거엔 염전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염전이 생기기 전 지금과 달리 수작업으로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바닷물이 염전까지 들어왔는데 이것을 ‘조금(한 달 중에서 조수가 가장 낮은 때)’이라 한다. 바닷물이 빠진 후 써레질을 해 땅을 간다. 농업일반 모내기 전 갈아놓은 논에 물을 대고 흙덩어리를 부수고 논바닥을 편평하게 고르는 작업을 일컫는 ‘써레질’을 염전에도 이용했다. 그 다음 햇빛이 쬐기 시작하면 소금 염분이 생기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염전 위에 생긴 먼지 같은 것을 쓸어 모은다. 그 다음 웅덩이를 판 후 나무를 쌓고 쓸어 모은 소금과 물을 붓는 작업을 한다. 그러면 짠 물이 웅덩이 밑으로 흘러 따로 고인다. 그 물을 따로 모아 가마솥에 부어 불을 땐다. 그런 식으로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이곳을 소금 굽는 ‘벌막’이라고 했죠. 그렇게 소금을 구워서 먹다가 어느 날 벌막이 막히고 나서 염전이 생긴거죠. 이 염전 생긴 것도 한 45~6년 정도 됐을거에요”라며 이장님이 설명하신다. 현재 염전의 총 면적은 9만 평이다.

“일본 쓰나미 땐 바다가 많이 오염돼 소금 값이 폭등해 30kg에 3~4만원 했었죠. 그 이후에 소금 사업 전망이 좋아서 폐 염전이 많이 신축됐는데 시간이 지나서 가격이 점차 하락됐어요. 중국산 소금까지 밀려오는 바람에 타격이 더 컸죠 아무래도. 올 봄엔 20kg에 약 3200원까지 하락해버렸어요” 이 일이 벌어진 후 싼 가격의 소금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돼 작년 4월 7일에 ‘(사)영광천일염생산자협의회(회장 손재관)’가 설립됐다고 한다. 현재 마을에 염전에 종사하는 인원은 7명이다. 현재 입동마을엔 총 57세대수와 104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예전엔 마을 주민 모두가 염전에 종사하셨는데 현재는 연로해지셔서 염전 일을 하는 인원이 얼마 안 된다고 한다. 염전은 중노동이라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한다. 노동력에 비해 소득이 적은 것도 크게 작용해 중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으러 떠난 사람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곳만의 소금 맛이 특별한 이유는 칼슘과 마그네슘, 천연 미네랄 함량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며 염화나트륨 함량이 낮고 알칼리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미네랄 함량이 높은 이유는 마을 주변에 있는 광활한 갯벌이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곳 소금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다보니 다른 지역보다 소금이 뛰어난다 한들 홍보가 활성화 되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몰라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한다.

최근에는 염전 체험장을 열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소금모으기, 운반하기, 수차돌리기 등의 염전체험을 한다고 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마친 후 이장님께서는 마저 끝내지 못한 포장 작업을 하러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이장님을 따라 염전 안으로 들어 와보니 구역마다 소금의 상태가 달랐다. 저 멀리 위치한 염전에서부터 소금 저장고까지 이어지는 염전까지 난치, 누태 ,결정지 순으로 명칭도 다르다. 이장님은 결정지에서 작업 중이셨다. 수평이 맞지 않으면 소금 맛이 변해버린다며 삽으로 조심스레 소금작업을 하신다. 찬바람이 부는 날씨 속에 묵묵히 홀로 일을 하시는 이장님을 뒤로하고 기자는 한 번 더 염전을 돌아본다. 그렇게 기자는 입동마을 탐방을 마쳤다.

민송이기자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