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에 온통 쓰레기천지
양동이 빗물 받아 샤워·식용
온 식구 마당에 모여 물장난

나와 동료들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맑았던 하늘이 쥐도 새도 모르게 새까맣게 변했고 ‘우당탕탕, 우르르쾅쾅’ 천둥소리와 번개소리는 하늘이 갈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새까맣던 하늘이 이번엔 시뻘겋게 바뀌더니 상상할 수 없이 거센 모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무는 휘청거렸고, 온 천지에 온갖 물건들과 쓰레기들이 휘날렸다. 현지인들이 천을 뒤집어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바닥의 모든 모래들이 바람에 솟아올라 얼굴과 온몸 곳곳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본 빨간 하늘은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색이었다. 모래바람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었다.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러다가 부르키나파소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지.

나와 동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모래바람을 잔뜩 맞아 얼굴은 갈색으로 변해있고 머리는 모래가 잔뜩 끼어 빗어지지도 않았다. 거지꼴이었다.

이것이 우기인 줄도 모르고 맞이하게 된 부르키나파소의 첫 우기였다.

이런 우리와는 다르게 현지인친구들은 축제분위기였다. 오히려 글썽이는 우리를 보며 배꼽이 빠질 듯 웃어재꼈다.

“비가 온다!!! 야호!!!”

한 방울, 두 방울, 후두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지자 그렇게 거셌던 모래바람과 시뻘건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해졌다.

현지인 친구들은 비를 보고 환호를 지르며 그제서야 머리에 둘렀던 천을 풀고 양동이에 빗물을 받기 시작했다.

비가 바닥을 뚫을 기세로 거세게 내렸다. 얼마나 거세게 내리는지 비를 계속 맞고 서있으면 두피가 아플 지경이다. 빗소리 때문에 대화하기도 어려웠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하나, 둘, 셋! 촤—악”

보아스가 갑자기 내게 와서 빗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들고와 내 머리에 엎었다. 내가 놀라는 모습이 웃겼는지 필립도 한 양동이를 들고와 미친 듯이 뿌려댔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제일 빗물이 많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보아스와 필립의 뒤를 쫓았다. 순식간에 마당은 아수라장이 됐다. 모든 친구들과 동료들이 전부 양동이를 들고 서로에게 마구 뿌려댔다.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다시 양동이를 제자리에 두고 빗물을 받았다. 빗물은 온갖 모래와 나뭇가지로 뒤엉켜 더러웠다. 한참을 그대로 양동이에 두면 더러운 것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깨끗한 물만 위에 뜬다. 그 빗물로 현지인들은 양치도하고 샤워도 하고 먹기도 한다.

평소 비오는 날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부르키나파소에서 제일 재밌고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자면 망설임없이 비오는 날이다.

온 몸에 비를 맞으며 양동이에 빗물을 받아서 친구들과 장난치던 그 때,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때가 떠오르고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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