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중섭 취재국장

강남역 10번 출구 앞의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진 정신분열증 환자에 의한 공중화장실에서의 ‘묻지마 살인’.

우발적 범죄 피해자, 그것도 한 개인에 대한 이같은 자발적인 추모 열기는 간단치않은 사회적 함의를 시사했다.

살인의 원인과 동기 분석이 어떠하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동정과 공감의 물결이 돼 우리 모두를 엄습했다.

우발적인 살인의 대상이 바로 나일 수도 있고, 그런 위험사회에 노출돼 있다는 공포까지 더해져 절로 섬뜩함을 감출 수 없다.

나의 안전은 이제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각성이 위험사회와 국가의 무능을 일깨운다.

추모열기와 추모 메모지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의문이고,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지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기념곡 지정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웠고, 가사 중 ‘임’과 ‘새 날’의 의미에 대한 논란도 뜨거웠다.

국론분열을 우려한다며 ‘제창 불가’라는 정부의 결정에, 불과 며칠 전 청와대 회동에 참석했던 야당 지도자들은 배신감에 분노했다.

제창 불허라는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념식장에선 참석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공기를 가르고 5월 하늘에 울려퍼졌다.

누가 뭐라해도 가사 중 ‘임’은 ‘5·18 희생자들’을 의미하고 ‘새 날’은 ‘민주화된 날’이라는 진실은 변함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의 삶과 유지를 함축하는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주제로 열린 추도식엔 한여름 같은 더위 속에서도 수많은 추도객들로 붐볐다.

“친노를 심판하겠다”고 공언했던 한 야당 지도자에게는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정치권 세력 간의 갈등이 추도식에서조차 드러났다.

추도사에서 “갈등을 털어내고 국민통합의 새 시대를 열자”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의 외침이 공허하게만 들렸다.

고인(故人)은 생전에 “갈등과 대립은 국민통합을 저해 한다”고 말했다.

그가 꿈꾼 ‘사람 사는 세상’ 한편은 ‘갈등과 대립이 없는 세상’이었다. 이날도 고인(故人)의 애창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불렀다.

#돈 때문에 최고의 지성이라고 자랑할 만한 변호사들이 검찰에 불려가고 압수수색, 법조비리 최유정 변호사가 구속기소 됐다.

100억원대 수임료는 로비자금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고, 전관예우 병폐의 심각성에 여론이 들끓었다.

수익을 좇는 직업이라지만 사회 기대치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행태에 모두가 분노했다.

이 사건 연장선상에서 ‘정운호 게이트’ 특수통 검사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 결국 구속됐다.

전관, 현관이 밀어주고 당겨주며 수백억 원을 벌어들이는 ‘그들만의 세상’. 이런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탈세 등 혐의로 홍만표 변호사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한 시점에 SNS를 뜨겁게 달군 또 하나의 사건은 ‘깔창 생리대’.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학교를 결석한 채 수건을 깔고 누워 있었다는 어느 저소득층 학생 이야기부터, 심지어는 신발 깔창을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우리사회를 슬프게 했다.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

그 눈물은 우리사회의 수치심, 여성의 인권, 인간 존엄성을 저해하는 수치심에 대한 항변이다.

‘100억원 수임료’와 ‘생리대 살 돈’. 이 돈의 비교가치에 서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5월 마지막 주말은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19살 김 군에 대한 애도의 물결로 뜨거웠다.

그의 공구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이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었고, 또래 청년들을 분노케 했다.

“김 군은 바로 나다” 그들은 불안정한 근로시장, 불확실한 미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사회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김 군의 일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며 추모글 포스트잇을 붙이고 또 붙였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고단한 삶으로도 모자라 어이없는 죽음까지 맞는 불행한 청춘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하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 한여름 같은 땡볕더위가 이어지던 5월. 그토록 뜨거웠던 2016년 5월을 떠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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