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초등학교 교단에 서다

와가두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 초청받아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이론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맹률 아프리카 최악유창한 불어실력 갖춰열악한 환경불구 순수

아프리카는 교육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부르키나파소는 세계 최저 문해율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진다. 벌써 그 나라의 교육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지내던 시골 코나에도 학교를 가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나가 생계현장에 뛰어든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역시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교재와 펜, 공책이 없어 학교만 겨우 왔다갔다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아프리카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아프리카를 위한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나섰다. 해외봉사과정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교육프로그램이다.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밝히고자 나와 동료들도 나섰다. 한국문화도 알렸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물론 필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매주 토요일, 일요일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불어 노래와 율동을 가르쳤다.

때때로 인형극, 연극, 부채춤, 문화댄스 등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처음 동네 꼬마들을 불러 모아 수업을 하던 때였다.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가르친 후 잘 따라하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는 방식이다.

“거기 너! 이리나와보렴. 쎄봉(잘했어)~ 자! 봉봉(사탕)” “선생님. 쎄빠 봉봉. 싸 쎄 본.본”

잘했다며 사탕을 건네주는 내게 한 유치원 아이는 봉봉이 아니라 본본이라 발음해야한다며 자기를 따라 해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미래를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유치원 아이들에게 불어를 배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창피해서라도 포기하고 도망갔을테지만 아프리카에 던져진 나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동료와 함께 주구장창 불어를 공부하며 매주 부족한 실력으로 노래와 율동 수업을 했다. 어느덧 불어로 연극까지 준비할 수 있었다.

부르키나파소 초등학생들에게 율동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다.
4개월이 지난 후 우리는 어느 초등학교에 초대돼 음악수업을 하게 됐다. 처음 가본 부르키나파소의 학교는 마치 수용소같았다.

철 창살 문으로 돼있는 교실에 전기도 없이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숨막히게 놀랬던 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향기’였다.

50℃가 넘는 기후에 환풍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교실에서 풍기는 60명 학생의 땀냄새란.

그렇게 시작한 학교에서의 첫 수업. 부르키나파소에는 제대로 된 음악 수업이 없기 때문에 노래 하나만 불러도 학생들은 무척 즐거워하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심히 배웠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배운 노래를 계속 따라 부르며 부족한 내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부르키나에 와서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세요" 부족한 선생님이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감사해하고 있었다.

음악을 가르쳐주러갔지만 그들에게서 더 큰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내가 본 부르키나파소 학생들은 희망이 넘쳤다. 그들은 그 어떤 것보다 귀한 ‘흑진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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